산업계에 파업의 긴장이 한껏 고조되던 지난 16일. 장석춘 LG전자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LG의 전자계열사 노조대표 10명은 경영진 3명과 함께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른 회사가 파업의 몸살을 앓고 있는 동안 이들 노사는 열흘간 미국에 머무르며 서킷시티 베스트바이 같은 대형 전자제품 판매장을 누볐다. 내 손으로 만든 제품이 과연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LG 제품의 품질이 날로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다만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면 꼼꼼히 메모했다. 노사는 저녁 시간마다 메모장을 앞에 놓고 머리를 맞댔다. 지난 89년 노사가 '선(先) 경쟁력 확보, 후(後) 성과 보상원칙'에 공감한 LG전자 노조는 투쟁구호를 내리는 대신 이렇게 경쟁력 제고에 몰두하고 있다. "LG전자가 조기에 글로벌 톱 기업으로 발돋움하려면 노조도 힘을 합쳐야죠."(장석춘 노조위원장)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현실적인 노선으로 전환하는 노조도 꾸준히 늘고 있다. LG 계열사 노조는 물론 현대중공업처럼 과거 강경투쟁의 선봉에 섰던 노조들도 속속 무분규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투쟁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노사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강성노조의 대명사로 불렸던 현대중공업 노조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이 공동요구안으로 내건 주5일 근무 실시와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은 요구조건에서 제외했다. 회사실정과 조합원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임금 9.6% 인상과 고용안정협약서 체결 등 조합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오는 사항들을 관철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에도 집행부만 동참키로 했다. 대우조선해양도 회사가 하청업체 근로자(비정규직 포함)들의 처우를 개선하라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자 노조도 기본급 인상안을 당초 요구했던 9.1%에서 5.4%로 낮춰 일찌감치 협상을 타결지었다. 철강업계에서도 INI스틸이 분규없이 임금협상을 마무리한 것을 비롯 무쟁의 임단협 타결이 줄을 잇고 있다. 9.48%와 5.0%의 현격한 임금인상안을 들고 맞섰던 INI스틸 노사는 한 발씩 양보해 5.9%선에서 쉽게 협상을 타결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