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하며 형이상학적 소설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박상륭이 '칠조어론' 이후 10년만에 장편소설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문학동네)를 펴냈다. 이번 신작 장편은 니체의 저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패러디적 반박과 전복을 통해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을 뒤엎고 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자 작가 스스로 창조한 새로운 짜라투스트라 읽기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작가는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언명을 공격함으로써 이분론에 기초한 서구 문명사에 통렬한 반박을 가하고 있다. "인간은 약 8천년 전부터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죠.내면에 밖과 똑같은 한벌의 우주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그러고는 그 초월적 힘에 이름을 붙였죠.그것이 힌두의 '타트'이기도 하고 도(道)이기도 하며 신(神) 혹은 여호와이기도 합니다.자기 안에 신이 있었던 거죠.때문에 '신은 죽었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한 것은 밖에 존재하는 신,구약에서 말한 신,외계의 신일 뿐입니다." 작가에 따르면 태초에 말씀을 통해 천지를 창조한 구약의 신은 우주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자연에 터잡은 그 신은 절반만 문화적이었다. 그런데 예수가 나와 절반쯤 자연에 묻혀 있던 그 몸을 뽑아 문화의 신을 창조해냈다. 그러나 서구 사상은 구약의 고정관념에 의존해 예수의 신관을 이원론적으로 이해했다. 인간과 신의 이원론은 서구에서 선과 악,나와 타자라는 이항론적 대립의 문명사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소설은 니체의 책처럼 짜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돼 한 늙은 성자를 만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하산 행위는 니체의 그것과는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다. 니체의 하산이 초인적 경지에 대한 스스로의 깨달음을 몸소 실천하고 인간들에게 가르침을 펼치려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면 이 소설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반성하고 '입장 수정' 또는 '입장 철회'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종교와 신화를 아우르는 폭넓은 상상력,생명과 존재의 근원을 파고드는 치밀한 논리,그리고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문체를 지닌 작품이지만 워낙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 가볍게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