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상반기가 오늘로 마감된다. 지난 6개월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의 6개월에 대한 기대를 가져보게 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T 칼라일의 표현처럼 경제학은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어서 일까. 경제문제를 다루는 기자들의 시야에는 기대되는 소식보다는 풀어야 할 현안들이 더 많이 들어온다. 범위를 금융분야만으로 한정해 봐도 상반기에 불거진 문제들 대부분이 하반기로 이월되는 상황이다. 우선 카드채 문제가 그렇다. 카드사와 투신권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4·3대책'은 오늘로 시효가 끝난다. 반면 시장에서는 내일 이후,즉 올 하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카드채가 어떻게 처리될지에 대한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은행과 투신권이 '자율협약'체제로 카드채를 연장해줄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미흡해 보인다. 카드채 문제와 맞물려 있는 또 다른 현안은 가계부실 문제다. 3백만명을 넘어선 신용불량자 문제는 이제 당사자들의 '도덕적 해이'만 탓하고 있을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신용불량자들이 강·절도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신용불량자가 한계 수위를 넘어서자 금융회사들이 '잠재 신용불량자'를 가려내겠다며 개인에 대한 신용공여를 크게 줄이고 있고 이것이 소비 위축과 경기침체 가속화라는 거시경제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금융의 위축도 하반기 금융시장의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계수상으로는 아직 이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이미 '풍요 속의 빈곤'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갈수록 늘어가는 중소기업들의 부도가 이를 증명한다. 올들어 신규 창업이 급속히 줄어든 것도 동전의 이면이라 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문제들에 비해 보다 거시적 차원의 현안으로는 '부동(浮動)자금' 문제가 있다. 4백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단기부동자금은 게릴라식으로 출몰하면서 경제 곳곳에 거품을 만들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금융회사에는 자금운용의 '미스매치(mismatch)'라는 문제를 던져주기도 한다. 수신의 만기구조가 짧아지기 때문에 여신에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궁리하다보면 이들 현안의 기저에서 한 가지 공통되는 키워드가 발견된다. 바로 '리스크 관리'의 문제다. 카드채를 연장해줄 것이냐 말 것이냐는 결국 카드사들이 '망해버릴' 리스크를 얼마로 보느냐의 문제다. 가계부실도 개인고객들의 리스크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심화될 수도,완화될 수도 있다. 기업금융 위축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부동자금 역시 금융회사들이 기간(期間)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의해 그 문제의 심각성이 좌우된다. 금융 현안의 본질을 이처럼 '리스크 관리'의 문제로 파악한다면 그 해법도 같은 맥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금융회사들이 각 현안에 대한 리스크를 '서서히' 낮춰나갈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런 점에서 올 하반기에는 금융당국의 정책운용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들의 건전성 문제 못지않게 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6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7월이 금융시장의 현안들이 해결되는 변곡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