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금융중심지가 되겠다는 '금융 허브' 구상은 우리나라만이 내세우고 있는 비전이 아니다. 전세계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런던 뉴욕 홍콩 싱가포르 등 기존 금융센터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미국 델라웨어, 그리고 룩셈부르크 등도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가 되겠다는 출사표를 던진 지 이미 오래다. 세계가 이렇게 뛰는 이유는 엄청난 혜택이 기대돼서다. 자국 금융산업이 발전하는 것은 물론 고부가가치 산업의 고용 창출 및 그에 따른 조세기반 확충, 자본조달비용 감소, 효율적 투자를 통한 경제성장 지속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외부 충격에 대한 탄력성이 높아지면서 금융 위기와 같은 충격을 방지할 수 있는 능력도 확보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도 크게 높일 수 있다. 특히 10~20년 뒤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를 아직 결정짓지 못한 우리나라로서는 금융허브가 여러가지 숙제를 한번에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우선 장기적 성장기반을 확충할 수 있다. 금융허브를 구축하면 우리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내세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산업구조를 서비스 및 지식기반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다.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임은 물론이다. 금융허브에서는 국내외 금융기관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국내 금융기관의 생존력 배양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금융허브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금융감독 및 법체계가 정비되고 규제 완화가 이뤄지면서 금융제도 및 환경이 국제 수준으로 높아진다는 점도 금융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은행 중심의 간접금융시장뿐만 아니라 자본시장 위주의 직접금융시장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다 아시아 금융협력에서 주도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동아시아 지역의 잉여자본 규모는 각국 중앙은행 외환보유고 등을 포함할 때 1조달러를 상회한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올까 하는 점이다. 다행히 기회 요인이 적지 않다. 일본은 과거 아시아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국제금융중심지로의 발전을 모색했으나 규제 완화의 미흡, 외국인에 대한 차별 등으로 인해 역내 금융센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홍콩은 선진 금융인프라 등에 힘입어 아시아 금융센터 역할을 해왔지만 중국과의 정치ㆍ경제적 통합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싱가포르는 지리적으로 동북아보다는 동남아 지역에 가깝고 경제규모도 역내 경쟁국에 비해 크지 않은 상태다. 중국도 상하이를 중심으로 국제금융센터 설립을 모색하고 있으나 국내 금융시장이 초기 발전단계에 머물러 있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회는 이렇게 열려 있지만 금융허브 구상에는 규제 완화 등 과제가 적지 않다. 규제 완화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나아지긴 했지만 외국인의 자본거래를 규제하는 부분이 여전히 적잖게 남아 있다. △비거주자의 원화증권발행 제한 △원화차입 제한 △비거주자간 원화거래 규제 등이 대표적 예다. 금융감독 및 법률체계 정비도 더 늦춰서는 안된다. 외국 금융기관들에 우호적인 금융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은행 증권 보험 등 권역별로 구분돼 있는 금융관련 법체계를 기능별 법체계로 재편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상시적 구조조정의 정착화 △해외 금융시장과의 연계성 강화 △금융전문인력 확충도 빠뜨릴 수 없는 과제다. 물론 우리나라가 뉴욕 또는 런던처럼 전세계를 대상으로 금융활동을 영위하는 글로벌 금융센터로 발전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아시아 시간대를 활용하는 고객에게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금융센터로 거듭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히 갖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