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東鎭 < 전 주영대사·인제대학교 석좌교수 > 새 정부 출범 후 줄줄이 이어진 파업사태에서 정부의 공언과는 달리 계속 노조에 밀려 그들의 요구만 수용했다는 비판이 있어왔으나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만은 정부의 단호하고 원칙에 입각한 대응 천명이 엄포로만 끝나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나라의 유사 사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지난 80년대 이른바 '영국병'을 치유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단호한 원칙을 끝까지 굽히지 않음으로서 노조를 굴복시켰던 선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 70년대 영국 경제를 침몰 직전까지 몰고 갔던 '영국병'은 노동당 정부 하에서 과도하게 팽창한 노조의 조직과 파워,그리고 그들의 과도한 쟁의로 야기된 기업 활동 위축 등이 병인(病因)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 중에서도 경제 회생에 필수적인 산업구조조정은 노조의 강력한 저항을 극복하지 못해 번번이 실패로 끝났고,결국 노사 분규가 최고조에 달했던 79년의 소위 '불만의 겨울' 뒤에는 노조를 기반으로 하는 노동당 정부의 퇴진까지 몰고 오게 됐다. 이때 중증의 '영국병' 치유를 기치로 내걸고 정권을 쟁취한 대처의 보수당 정부에는 산업구조조정과 공기업의 과감한 합리화가 시급한 필수 과제였으나 노동당 보수당을 불문하고 전 정부 총리들이 모두 노조와의 파워 게임에 밀려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극심한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석탄산업의 대수술이 선결과제였으나 광산노조는 이미 에드워드 히스 전 보수당 정부의 구조조정 노력을 좌절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권 자체를 퇴진시킨 전력을 갖고 있는 최고 강성 노조였다. 그 위원장 아서 스카길은 막강한 카리스마적인 인물로 아돌프 히틀러에 빗대어 아돌프 스카길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질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처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안이 발표되자 광산노조는 즉시 전면 파업에 돌입하면서 힘으로 대항할 결의를 다졌다. 스카길 위원장은 단순히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처의 정치 철학과 경제 정책에 정면 도전하며 자신만만한 정치적 성격의 파업을 주도했다. 양쪽 모두 일보도 양보할 수 없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파업이 시작됐고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이 계속됐다. 파업의 장기화는 화력발전소 조업과 에너지 수급 계획에 차질을 초래하는 등 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으나 대처 총리는 적자 누적만을 가져오는 탄광을 폐쇄하는 것이 산업 합리화의 제일보라는 굳은 신념과 원칙을 고수해가면서 탄광을 국민 세금 보조로 유지하는 불합리성을 들어 일반 국민과 파업 노조원 및 그 가족들을 꾸준히 설득해나갔다. 이와 같이 촌보의 양보나 타협 없이 일관성있게 구조조정안을 밀어붙임으로써 장장 1년간을 버티던 노조도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불패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강성 노조의 전면 패배였다. 민심은 노조를 이반(離反)했고 국민들은 불편을 감내하면서 정부의 확고한 리더십을 지지했다. 이를 분수령으로 대처 정부의 노조 개혁작업이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노조의 파워 약화,노조활동 및 과도한 파업의 규제,노조 민주화 등을 실현시키는 법제화가 이루어졌으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공기업을 민영화할 수 있었고,산업 합리화를 이루고 생산성이 향상돼 '영국병'을 말끔히 치유했을 뿐 아니라 영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투자하기 좋은 나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지도자의 확고한 신념과 통찰력,여론을 곁눈질하지 않는 일관된 원칙 고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실례이며,오늘날 우리나라와 같이 어렵고 어수선하며 자칫 '영국병'과 같은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지도 모를 사태에 직면해있는 우리 정부 지도자들이 반드시 되새겨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djchoi35@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