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일자) 夏鬪에 새 불씨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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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이정우 정책실장이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노조가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노조의 경영참여를 허용하는 네덜란드식 모델을 도입할 뜻을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이는 '도입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될 제도'로서 공연히 분란만 일으켜 꺼져가는 하투(夏鬪)에 새로운 불씨를 만드는 꼴이 되고 말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실장을 비롯한 네덜란드 모델 도입론자들은 1982년에 있었던 바세나르 협약을 상정하고 있는 모양이나 네덜란드가 이런 합의에 이르게 된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1차 오일쇼크로 석유값이 오르자 북해 유전이 채산성을 갖추면서 석유산업이 임금인상을 선도했고,노조의 강력한 임금투쟁으로 나머지 산업들도 덩달아 임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됐다.
그 결과 석유를 제외한 모든 산업의 경쟁력은 급격히 추락해 실업률이 무려 12%에 이르는 극심한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에 시달리게 됐던 것이다.
그러자 노·사·정 모두에게 이대로는 안된다는 강력한 컨센서스가 형성됐고 이 것이 바세나르 협약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노·사·정 간 이런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는지는 이 실장을 비롯한 정부관계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기업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은 과격한 노동운동을 우리 경제의 최대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으나 정부와 노동계는 노동운동에 힘을 더 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현격한 인식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판을 벌여봐야 사용자측이 일방적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협약이 될리가 만무하다.
이런 점에서 네덜란드 모델 운운은 노조 망국론이 나오고 있는 마당에 노조에 힘을 더 실어주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IMF 구제금융이라는 위기상황에서조차 노사정위가 소모적인 논쟁만 반복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 내기는커녕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설령 노·사·정이 대타협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노조의 경영참여를 허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노사문화가 성숙된 유럽과는 달리 대립적 투쟁적 노사관계가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노조의 경영참여 허용으로 노사평화가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은 현대자동차의 예에서 이미 입증되고 있다.
현대차는 2001년 단체협약에서 노조의 부분적 경영참여를 허용했으나 파업이 수그러들기는커녕 연례행사로 반복되고 있고,노조반대로 다임러와의 합작공장 신설이 지연되는 등 엄청난 경영상의 대가만 치르고 있다.
유럽에서도 유럽식 모델의 실패를 인정하고 노조의 경영참여를 배제해 나가고 있는 마당에 난데 없이 유럽식으로 간다니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따라서 정책당국자들은 네덜란드 모델 운운하면서 노동계에 또하나의 파업 핑계거리를 제공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철도파업에서 입증되었듯이 현 단계에서는 법과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과격한 노동운동에 대한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네덜란드 모델이든 무엇이든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합리적인 노사문화가 정착된 후에 검토하는 것이 옳다.
차제에 노무현 대통령이 노조에 대한 손배소를 조합비 범위내로 한정하라고 했으나 이 또한 과격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노사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