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22:23
수정2006.04.03 22:26
이건희 삼성 회장의 스웨덴 발렌베리가(家) 방문은 단순히 재벌 가문간의 사교적 만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의 발렌베리가 방문 목적은 그룹 경영권의 안정과 신뢰받는 기업상 정립 등에 대한 구상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는게 재계의 분석이다.
발렌베리가는 대주주들이 5대에 걸쳐 경영을 이끌면서 계열사들을 에릭슨, ABB, 사브, 스카니아 등 세계적인 일류기업으로 키운 오너경영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이 회장은 장기적으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어떻게 안정시켜야 하며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기업이 국가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발렌베리가를 방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의 고민 =삼성가(家)의 가장 큰 고민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경영체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는 것이다.
현재 성과를 거두고 있는 오너경영체제의 장점을 계속 살려가는 동시에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경영 모델을 찾는 것이 과제다.
첫번째 과제는 경영권의 안정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지분 상속과 정리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지만 더 아랫세대로까지 지분과 경영권이 안전하게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정부는 상속ㆍ증여에 대한 포괄과세제도 도입을 추진중이고 사회단체들은 오너경영 자체에 대해 감시의 눈빛을 번득이고 있다.
사회단체와 정부의 견제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사내에서 실질적인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현재 강력한 파워를 발휘하고 있는 이건희회장-구조조정본부-각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체제'가 흔들림없이 유지되는 방안을 마련해 줘야 하는게 이 회장의 고민이다.
이 회장의 또다른 바람은 삼성이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정부와 협력하는 관계를 맺는 것.
단순히 이익만을 바라보고 뛰다가는 어떤 견제를 받아 흔들릴지 모른다.
삼성의 사회적인 위치를 확실히 만들어놔야 경영권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삼성호(號)'가 순항할 수 있다.
또한 전자 계열사를 제외한 금융 화학 등 다른 기업들이 아직도 국내기업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고민이다.
왜 발렌베리인가 =삼성가의 고민에 대한 해답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발렌베리가다.
선진국 대기업의 경우 성장과정에서 대주주는 지분율이 계속 하락하고 경영에서 점점 손을 떼는 회사가 많다.
하지만 발렌베리가는 5대에 걸쳐 오너경영체제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삼성이 오너경영에 대한 거센 비판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오너경영의 장점을 살려 경영에서 계속 좋은 실적을 올려야 한다.
삼성이 발렌베리가의 성공모델을 학습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다.
특히 발렌베리가 계열사는 삼성처럼 금융 통신 전자 자동차 제약 등 전 분야에 걸쳐 있으면서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다.
전자를 제외한 분야에서는 국내기업 1위 수준에 머물고 있는 삼성이 부러워하는 대목이다.
발렌베리가가 스스로를 스웨덴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인식하고 국가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회장과 코드가 맞는 부분이다.
이 회장이 "2만달러 소득달성에 주력해 사회갈등을 치유하자"고 호소한 점과 맥이 닿는다.
발렌베리 계열사들이 스웨덴 스톡홀름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0%를 차지,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데도 비판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도 삼성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