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원들이 '유권자 꿔주기'선거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는 소식이다. 개정안대로라면 인근 선거구의 읍·면·동을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유권자를 끌어올 수 있다고 한다. 한국판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인 셈이다. 지역구를 상실할 위기에 처한 농촌지역의 의원들이 중심이 돼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획정하고자 하는 것이어서 시대착오적이라는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지난 2001년 헌법재판소는 단일 선거구의 인구 상·하한선 비율을 3 대 1로 제시했는데,이를 적용할 경우 30개 안팎의 선거구가 재조정 대상이 되면서 정가의 큰 관심이 돼 왔다. 정당이나 후보자가 당리당략에 따라 선거구를 임의로 조정하는 '게리맨더링'이란 단어는 1812년에 등장했다. 당시 공화당 소속 매사추세츠 주지사였던 엘브리지 게리는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야당보다 표를 덜 얻고도 훨씬 많은 당선자를 냈다. 선거구를 새로 획정하면서 자연적인 지형과 문화 등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당선위주로 조정했기 때문이었다. 선거구가 이상야릇한 모양을 띠자 한 신문기자가 그것을 도롱뇽(salamander)에 비유하면서 게리 지사의 이름을 그 위에 얹어 게리맨더링이란 신조어를 사용한 것이다. 유권자는 행정구역이라는 지역공동체 안에서 경제적 이해를 같이 하면서 생활하고 문화적·정서적인 동질성 속에서 살아가는 게 일반적이다. 이를 무시한 채 사는 곳과 투표하는 곳을 따로 정한다면 당선자가 지역의 대표성을 갖는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우리 선거법은 선거구 획정을 선거일 1년 전까지 결정하도록 명문규정을 두고 있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게리맨더링을 방지하자는 취지임은 물론이다. 이번 개정안 제출을 계기로 선거구별 인구하한선을 정하는 작업이 큰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이는데,특히 이농현상이 심각한 농촌지역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해당의원들은 표의 등가성도 중요하지만 도·농간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정치인의 입맛대로 선거구를 쪼개는 노골적인 게리맨더링은 안 될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