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공동화가 우려된다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올들어 지난 5월까지 우리나라로 들어온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4억달러로 작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데 밖으로 나간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11억달러로 나타나자(한국은행 집계) 산업공동화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우리나라 제조업의 해외이전 동향과 대응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제조업의 해외 이전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오는 2007년부터 산업공동화 문제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2000년 말 우리나라 해외투자 잔액이 명목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8%로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4배인 일본과 같다고 지적했다. 산업공동화 우려는 올 초에도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결과 국내 제조업체 가운데 3개중 2개꼴로 해외로 공장을 옮기고 있거나 옮길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공동화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원래 도시경제학에서 사용된 공동화(空洞化·hollowing-out) 용어는 도시가 성숙단계에 진입하면 인구와 산업이 주변부로 이동하면서 중심부가 비게 되는 현상을 가리켰다. 산업공동화 용어가 널리 사용된 것은 1980년대 후반쯤이다. 당시 잘 나가던 일본이 미국 경제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과정에 이 용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1989년 일본 통상산업성(지금의 경제산업성)은 산업공동화를 '제조업의 생산거점이 해외로 이전함에 따라 국내 고용이 감소하고 중장기적으로 기술경쟁력도 저하되고 국제수지가 악화되는 상황'으로 규정한 바 있다. '산업공동화'란 용어에 경제학적으로 엄밀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고 대개 이 범주에서 이해되고 있다. 산업공동화가 사실상 제조업 공동화와 동일시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일단의 미국 경제학자들(수정주의 내지 신개입주의자)도 80년대 미국 제조업이 일본에 추월당했다고 생각했을 때 이런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공동화 문제를 '산업구조조정'이라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역시 미국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90년대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호황을 누린 것을 설명하려면 80년대의 부침을 공동화가 아닌 구조조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쪽은 구조조정을 못한 채 산업공동화 문제로 발목을 잡힌 것이 바로 일본이라는 생각을 깔고 있다. 산업공동화냐 산업구조조정이냐는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를 바라보는 상반된 논쟁으로도 이어진다. 콜린 클라크는 국민경제 내 산업 비중이 1차산업(농업)→2차산업(제조업)→3차산업(서비스업)으로 옮겨간다는 역사적 경험법칙을 주장했지만 제조업의 비중 변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견해 차이가 있다. 한 쪽은 제조업과 경제성장률 간의 높은 상관관계,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 국제수지 악화 문제 등을 지적하며 제조업을 강조하는 반면 다른 쪽은 IT의 발전과 이로 인한 서비스 생산성 향상, 제조업의 서비스화, 신산업 부상, 서비스교역 증대, 경기변동 완화 등의 관점에서 정상적인 경제현상으로 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한마디로 이런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른다. 공동화든 구조조정이든 어느 관점에서 봐도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내 제조업 잠식은 이미 현실이 됐다. 기업이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겨도 선진국처럼 설계 디자인 부품소재 등에서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해 해외 생산기지를 통제하면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준비가 됐는지는 의문이다. 기존 제조업을 대체할 신산업이나 서비스업의 경쟁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고민거리다. 이도저도 아니면 외국인 투자를 엄청나게 유치해야 하는데 우리 여건은 거꾸로만 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문제의 심각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중국은 우리가 원하는 속도대로 산업공동화 '연착륙'을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요소비용 노사분규 정부규제 등으로 사실상 타의로 떠나는 기업들마저 속출한다면 그 결과가 어떠할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 아닐까. <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