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경제 중심 구상을 '연구개발(R&D)의 허브' 전략으로 실현하자는 주장은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에 한국의 제조업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세계의 생산공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정면으로 맞붙어서는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을 계속해서 확보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아직까지는 인력 및 인프라가 한국에 비해 부족한 중국과, 인력과 인프라는 갖췄지만 이를 활용하는데 필요한 비용이 많이 드는 일본 사이에서 한국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이 바로 R&D 허브라는 얘기다.


R&D 허브 옹호론자들은 한국이 미래 신산업을 주도할 세계적인 R&D 허브로서 비교우위를 갖게 되면 동북아 시장을 공략하려는 외국 기업들이 앞다퉈 한국을 찾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R&D는 물론 물류 금융 등에서도 중심으로서의 위상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세계적 우량 기업들이 R&D 활동을 점점 더 국제화하고 있는 추세가 R&D 허브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눈여겨보고 있는 대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본국이 아닌 해외에서 수행한 R&D가 총 R&D 지출의 12% 이상에 달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해외계열사가 차지하는 R&D의 비중이 30% 이상으로 나타났다.


각국 기업들이 R&D의 국제화를 이처럼 추진하는 데는 두드러진 이유가 몇가지 있다.


이들은 △생산과 연구시설의 입지 동일화를 통해 해외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연구개발의 집적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며 △각종 제도의 규제완화 및 인센티브를 향유하면서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R&D의 국제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기업들이 해외 R&D 거점에서 얻으려는 이런 혜택들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와 인프라를 정비하는 일이 한국이 R&D 허브가 되기 위해 취해야 할 전략 방향인 셈이다.


과연 우리는 이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해 동북아를 대표하는 R&D 허브가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우리만의 강점을 살리면서 중국 및 일본의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한국이 동북아 R&D 허브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순수과학 및 군사기술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해 R&D의 산업적 응용이 아직 활발하지 못하다.


또 정부 소속 연구소를 중심으로 R&D가 진행되기 때문에 기업 자체의 R&D 역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는 장기 경기침체로 시장의 역동성이 상실됐고 고비용과 자국 R&D에만 의존하는 폐쇄성이 취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훨씬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우선 생산기술 면에서 선진국에 상당한 수준으로 근접해 있다.


특히 60년대 섬유 및 신발, 70년대 전자 및 조선, 80년대 자동차 및 철강, 90년대 컴퓨터 및 반도체 등을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산업으로 성장시킨 성공경험을 가지고 있어 R&D 허브로서의 기반을 갖추고 있다.


또 인구 대비 고등학교 졸업인구 비율과 대학 졸업인구 비율이 세계 5위 이내로 우수한 인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도 동북아 R&D 허브 구축 가능성을 높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에는 다국적기업인 페어차일드와 머크가 정보기술(IT)분야 우수 인력과 인프라를 활용하기 위해 한국에 아시아 R&D센터를 설립하는 등 긍정적인 조짐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R&D 허브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외국기업에 개방적인 기술개발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내ㆍ외 기업간 공동기술개발 지원 △주력 기간산업 국제공동연구 프로그램 운영 △정부 기술개발 지원사업에 외국기업 연구소의 참여 유도 등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국제적인 수준의 R&D 자원(인력ㆍ설비)을 확보해야 하고 기술개발 관련 정보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또 R&D 결과물을 쉽게 사업화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국제기술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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