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명맥이 끊긴 것으로 알려진 고대 악기 '공후'가 고악기 연구교수와 악기장에 의해 1천년 만에 재현됐다. '고악기연구회' 회장인 전북대 조석연 교수(33·한국음악과)와 악기장 고수환씨(53·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는 수년 간 노력한 끝에 공후를 복원,최근 전주시 전통문화센터에서 '공후,그 가능성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연주회를 가졌다. 공후는 60년대에 국립국악원에서 형태만을 복원했으나 실용화를 위해 악기뿐 아니라 연주법까지 되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공후의 복원은 조 교수가 수년간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고증과 설계를,악기장 고씨가 제작을 각각 맡았으며 작곡과 연주는 전북도내 대학의 국악과 교수와 학생으로 구성된 고악기 연구회원들이 담당했다. 이번에 복원된 공후는 옛 자료 가운데 '백제금(百濟琴)'이라 불리며 일본 왕가에 전해지는 공후의 부서진 잔해와 통일신라 때 제작된 상원사 범종의 공후를 타는 비천상을 뼈대로 했다. 연주법은 옛 문헌의 기록과 돈황 벽화 등 다양한 공후 연주모습 등을 보고 조 교수가 고안했다. 오동나무로 된 지주대 겸 울림통,조율대와 조율기,받침대에 23줄의 현으로 구성된 이 악기는 현대음악을 소화해내기 위해 전통 5음계 대신 7음계를 택했으며 현은 음량을 늘리려고 명주실 대신 양금줄을 사용했다. 지난 연주회에선 전북대 이화동 교수(한국음악과)가 작곡한 '신 공무도하가' 등 다양한 공후 연주곡이 선보여 큰 관심을 끌었다. 조 교수는 "그동안 고악기는 연주가 아닌 형태 복원 수준에 머물렀다"며 "이번 공후의 복원을 통해 고악기의 실용화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고대 동양의 현악기인 공후는 서양으로 건너가 하프가 됐다고 하며 우리나라는 고조선 때 공후를 타면서 '공무도하가'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고 그 명맥이 고려 때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장욱진 기자 sorina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