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투자의 불모지대로 변해가고 있다. 막강 제조업을 이끌어온 대기업들은 앞다퉈 해외로 빠져 나가고, 중소기업들은 하나둘씩 부도를 내며 쓰러지고 있다. 대기업 공장의 해외 이전 행렬은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2000년에는 제조업에서만 2천2백37억유로 규모의 자본이 빠져 나갔다. 외국기업들의 독일 진출도 판매 서비스 업종에만 국한되는 제조업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프라운호퍼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01년 기준으로 종업원 5백명 이상 대기업의 85%가 생산기지 전부 또는 일부를 해외로 이전했다. 종업원 수만명씩을 고용하고 있는 대형 제조업 공장들을 이제는 독일 내에서 찾아보기조차 어려워졌다. 연구와 관리부문까지 해외로 옮기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아킴 데레크스 독일연방상공회의소 이사는 "높은 세금과 임금, 융통성 없는 노동법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해외로 떠나가고 있다"며 "최근 들어서는 관리 및 연구개발 분야 업체들까지 해외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독일 반도체 업체인 인피니언, 전자부품 업체인 엡코스, 식품그룹인 외트커 등은 아예 본사를 외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래산업을 주도할 첨단 분야에서 독일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독일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비즈니스 위크지(誌)가 발표한 정보기술(IT) 부문 '세계 베스트 10' 명단에서 독일 기업은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이 휴대폰 생산업체인 넥스텔 등 5개,한국(삼성전자)과 영국(보다폰) 핀란드(노키아) 대만(혼하이) 인도네시아(PT텔렉) 등이 10위권 내에서 한 자리씩 차지했으나 독일 기업으로는 소프트웨어 생산업체인 SAP가 40위에 올랐을 뿐이다.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의 최근 조사 결과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독일 기업들의 생산능력을 좌우하는 기계설비부문 투자가 2001년 5.8% 줄어든데 이어 지난해에는 9.4% 감소했다. 게르하르트 펠스 쾰른 독일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기업들의 투자가 줄어든 것은 본질적으로 독일의 구조적인 문제들에 기인한다"며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고 사회복지비 부담을 덜어줄 처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쾰른=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