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독재자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중 하나는 국민차(Volkswagen)를 만들어 보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국민차 생산을 위해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한 자동차 기술자 페르디난드 포르셰를 불러 설계를 지시했는데,어른 두명과 어린이 세명이 탈 수 있어야 하고 정비가 쉬울 뿐더러 차 값은 1천마르크 이하여야 한다고 했다. 또 시간당 속도는 1백㎞,무게는 6백50㎏,휘발유 1ℓ로 14.5㎞를 주행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지침도 내렸다. 폭스바겐이 나치의 상징으로 여겨진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었다. 1936년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폭스바겐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군용차 쿠벨바벤으로 대체됐고,종전후 연합군의 관리하에 생산이 재개되면서 50∼60년대에는 독일 경제부흥의 견인차 노릇을 했다.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군들이 값이 싸면서 실용적인 폭스바겐을 본국에 사들여가면서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한 동안 할리우드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다시피 했다. 폭스바겐이 딱정벌레 같다고 해서 '비틀(Beetle)'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바로 이때였다. 단일 차종으로 7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2천5백여만대를 출고해 온 폭스바겐사가 비틀 생산을 중단한다는 소식이다. 지난 78년 본토 독일에서 단종된 비틀은 여러 해외 기지에서 생산해 왔는데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멕시코 푸에블라 공장의 라인이 이달 말로 폐쇄된다는 것이다. 비틀은 날로 격화되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에 밀려 생산량이 해마다 급감해 왔다. 폭스바겐사는 비틀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편의성을 개선하고 신형 '골프'를 출시하면서 안간힘을 썼으나 소비자 반응은 별로 신통치 못했다. 히틀러가 의욕적으로 만든 폭스바겐은 '기쁨의 힘'이란 뜻의 '카데프(KdF)'라는 이름을 갖기도 했다. 오랜 기간 독일인들에게 긍지와 기쁨을 안겨주었던 비틀의 퇴장은 현 독일 경제의 우울한 상황과 맞물려 더욱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