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리더 자리를 놓고 중국과 늘 신경전을 벌이는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은 관심을 늦출 수 없는 초특급 현안이다. 한국과 중국의 친소 관계에 따라 자국의 외교적 위상과 영향력이 달라질 것이 뻔한 이상 일본 정부와 언론이 회담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중 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날인 9일 일본의 한 유력 신문은 정상회담의 결과를 놓고 뼈있는 말을 던져 눈길을 끌었다. 북한 핵문제의 해법과 관련, 신문은 "한·중이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쪽으로 너무 기운 것 같다"며 "대화와 압력으로 핵문제를 풀려는 미국 일본과 틈이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에 동조해 온 고이즈미 정권의 내부 사정과 일본 사회의 반북한 감정을 고려한다면 이같은 지적은 한반도 주변 당사국간의 공조 와해가 북한 핵문제 해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자국 이익부터 먼저 챙기게 마련인 일본 언론이 베이징 회담을 지켜보면서 걱정스런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주목하고 싶은 대목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외교 행보에 대한 언급이다. 이 신문은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위기증대시의 추가적 조치 검토'에 합의한 후 6월의 일본 방문에선 '대화와 압력 중 대화에 더 무게를 실어주고 싶다'고 말한 것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한·중 정상회담에선 압력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며 북한에 유화적인 노 대통령이 중국에 이끌려 원점으로 회귀한 인상도 든다고 지적했다. 이해가 제각각인 초강대국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북한 핵문제라는 난제를 풀어야 할 노 대통령이 일관된 소신과 주장을 견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불과 한달씩의 시차를 두고 이어진 정상외교에서 동일한 문제에 대한 자세와 해답이 매번 바뀐다면 이는 경우가 다르다.식견부재에다 상황에 따른 말 바꾸기로 비쳐질 수도 있다. 일본 언론의 지적이 불쾌할수 있지만 주관과 철학,그리고 비전이 뚜렷한 지도자를 보고 싶은 것은 기자 한사람만의 욕심이 아닐지 모른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