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허브 구상은 기회요인에 집중한 우리나라의 중장기 전략이다. 아시아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동북아 지역 한 가운데 있는 나라로서 물류, 금융, 연구개발(R&D) 등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아 새로운 성장 동력을 도모하자는 그랜드 비전인 것이다. 물류나 금융, R&D에 비하면 동북아에너지협력체를 구성하자는 제안은 위기요인에 초점을 두고 있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 규모나 잠재력에 걸맞지 않은 에너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지 않으면 새로운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어서다. 최근 세계적으로 에너지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들이 등장하면서 에너지 안정보장 위기론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이 위기는 그러나 자원의 고갈로 인한 것이 아니다. 자원의 지역적 편재와 자원을 둘러싼 정치적 불안정성에 의해 야기되고 있다. 특히 동북아 지역은 석유매장량 부족과 수입대상국인 중동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성이라는 이중(二重)의 위기 때문에 취약하다.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경우 동북아 지역 국가들 모두 에너지 기반 없는 경제성장이라는 사상누각(沙上樓閣)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럴 가능성이 더욱 큰 상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에너지와 관련해 '3중고(三重苦)'를 겪고 있다. 우선 수급측면에서 중국의 원유수요가 급증하면서 국제원유시장의 교란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중동 국가들의 동북아 원유수출이 급증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돌아올 몫은 그만큼 적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두 번째로는 가격 측면에서의 위기다. 중국의 원유수요가 늘면서 최근에는 원유를 도입할 때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아시안 프리미엄'이 심화되고 있다. 90년대 들어 정착되기 시작한 이 아시안 프리미엄 때문에 아시아 석유소비국들은 원유구입 비용으로 연 5천억~1조엔을 추가로 부담(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 번째 고통은 환경측면이다. 1997년 채택된 도쿄의정서가 발효되면 화석연료 사용이 인위적으로 제한된다. 우리나라는 이런 기후변화협약 등에 매우 취약한 상태다. 미래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이런 에너지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동북아 에너지 협력 과제 또한 동북아 허브 구상 가운데 하나로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현진 수석연구원은 "동북아시아 에너지기구(NEAEA)의 설립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석유수급 및 가격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ㆍ중ㆍ일 3국을 중심으로 러시아 북한 몽골 등까지 참여하는 동북아에너지협력체를 만들어 공동 노력해 나가면 역내 에너지 안정보장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동북아 에너지 협의체를 만들어 수입선다변화, 대체에너지 개발 등 작업을 해나갈 경우 수급문제는 해결의 가닥을 잡을 수 있다. 북해산 브랜트원유를 기준으로 하는 원유 도입가격체제의 정비, 아시아 석유제품시장의 정비 및 확충, 소비국의 결속과 협상력 제고 등 노력을 기울이면 가격문제에서도 동북아나라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문제는 동북아에너지 협력에 대한 종합계획과 실행계획이 아직까지 그 어디에도 마련돼 있지 않다는데 있다. 그만큼 어려운 과제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동북아 허브 구상 가운데 하나로 '동북아 에너지 협의체 주도'를 내세우는 등 경제·외교적인 접근을 해나가면 우리에게 그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된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