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조선시대 실학자들 가운데 '북학파', 특히 박제가를 기억할 것이다. 박제가는 2백25년 전(1778년) 정조 때 채제공 이덕무와 함께 중국(청나라)을 다녀와 '북학의' 내ㆍ외편을 저술한 인물이다. '북학의'를 관통하는 화두는 요즘 말로 '개혁'이다. 그는 중국에서 직접 목격한 효율적이고 견고한 수레 배 성 벽돌 기와 등의 문물을 조선의 낙후된 현실과 일일이 견줘가며 시대를 아파했다. 심지어 "놀고 먹는 자들은 나라의 큰 좀"이라고까지 비판했다. 그는 특히 오묘하고 아름다운 중국 자기와 거칠고 울퉁불퉁한 조선 자기를 비교하며 '북학의'에서 이렇게 썼다. "한갓 도자기의 품질이 나쁘다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나라의 모든 일이 이를 닮아간다는 것이다."(박정주 옮김, 서해문집) 지난주 중국, 특히 상하이를 둘러본 노무현 대통령이 단단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게 첫 방중 소감이다. '상하이 쇼크'라고 부를 만하다. '이제사 느꼈느냐'는 입방아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거의 해외에 나가보지 않았던 그로선 취임 후 '세계 3강'(미국 일본 중국)을 순례하며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고민했으리라. 때문에 이번주 노 대통령이 챙길 국정 현안회의에 유달리 관심이 커진다. 월요일(14일)에 열릴 하반기 경제운용방향 보고회의 및 경제민생점검회의에 이어 국무회의(15일), 빈부격차 해소 국정과제회의(16일)가 줄지어 예정돼 있다. '법과 원칙'에 목마른 국민들에겐 제헌절(17일) 기념사도 관심거리다. 누구보다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는 노 대통령이 괄목상대할 변화를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15일엔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유치 신청이 마감된다. 요즘 산업자원부의 신문ㆍTV 광고 문구처럼 25년을 끈 이 문제는 더 이상 피할 수도, 늦출 수도 없어 비상한 관심거리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지금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꼭 보호해야 할 노동자는 누구인지, 스크린쿼터와 한ㆍ미투자협정중 어떤 선택을 할지, 새만금은, 나이스(NEIS)는, 그리고 정치 개혁은…. 18세기 실학 정신은 백성을 위한 실사구시(實事求是)ㆍ이용후생(利用厚生)이었다. 2백여년이 지난 21세기에도 그 정신은 전혀 낡아보이지 않는다. <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