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국민은행장은 건재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병원 신세'를 졌던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지난달 17일 출근 이후 한 달 남짓 국민은행을 '추스르는' 작업에 매달렸던 김 행장을 지난 14일 저녁 한국경제신문이 단독으로 만났다.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김 행장은 속마음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인터뷰는 주식 얘기로 시작했다. 이날 국민은행 주가가 5.16% 오른 것을 화제로 꺼내자 김 행장은 "주주들이 좋아할 것"이라며 "요즘 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아 우리 회사도 돈을 꽤 벌었지요(국민은행은 상반기에 1조원을 주식에 투자해 1천억원의 평가익을 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주식투자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 있는 것 같다"고 하자 김 행장은 "당시 주식투자를 결정한 것은 직접금융시장이 붕괴될 경우 기업들이 은행으로 모두 몰릴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주식시장의 붕괴는 불량기업에 대한 대출로 이어지고 이는 곧 은행의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행장은 또 "다른 은행에도 '함께 투자하자'고 제안했는데 모두 거절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화제를 옮겨 최근 금융노조가 은행원의 정년을 만58세에서 만63세로 높여달라고 요구한데 대한 견해를 묻자 김 행장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는 "58세인 현재의 정년도 다 못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때문에 상당수 노조원들은 임금피크제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행장은 "하지만 임금피크제의 시행 연령, 급여 등에 대해선 아직까지 합의된게 없다"며 "노조와 상의한 후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부분에서 김 행장은 불쑥 "직원들이 최근 불안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다"는 얘기로 건너뛰었다. 자신이 이달 초 월례조회에서 "일부 임직원들이 CEO와 다른 가치관을 보이거나 조직을 혼란시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경고성 발언'을 한데 대한 해명인 셈이다. "다음날 신문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목에 '반대세력 축출' '숙청' 등 섬뜩한 단어들이 동원됐더군요. 하지만 급진적인 구조조정이나 인사는 없습니다. 단 통합 은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점진적인 개혁은 이뤄져야겠죠." 화제는 국민은행의 영업실적 문제로 넘어갔다. 김 행장은 "2분기 실적에 대해 증권가에서 3백억원 흑자, 5백억원 적자 등의 얘기가 나오는데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행장은 "국민은행의 자산 규모로 봤을 때 월 2천억원씩 세후 순익을 내야 정상"이라며 "카드문제, 가계대출 문제 등이 해결되고 경기가 회복되는 내년 이후에야 정상 순익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얘기 끝에 김 행장은 갑자기 생각난 듯 한국은행이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3.1%)로 화제를 돌렸다. "올해 연간으로 3.1% 성장하려면 하반기 성장률이 5%는 넘어야 된다는 얘긴데 가능하다고 보느냐"고 기자에게 질문을 던진 것. 기자가 질문의 취지를 되묻자 명쾌한 답변이 이어졌다. "경제성장률을 높게 잡은 것은 정부가 그만큼 하반기에 경기부양에 나서겠다는 의미이고 그렇게 된다면 국민은행 실적도 당초 예상보다 빨리 좋아질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특히 소매금융을 주력으로 하는 국민은행의 경우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부연설명도 덧붙였다. 김 행장은 이어 금융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ING와의 상호 지분 철수설'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사실 ING측에 미안합니다. ING는 방카슈랑스와 관련된 배타적 제휴를 염두에 두고 국민은행에 지분(3.87%)을 투자했죠. 그런데 정부가 특정 보험사 상품을 50% 이상 판매할 수 없도록 하는 제약을 둬 계획이 빗나간 겁니다. 하지만 ING와의 계약 파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끝으로 신규사업 진출 계획을 묻자 김 행장은 "크레딧뷰로 사업에 대해선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대금업 진출은 정부 규제가 많아 당분간 접어둔 상태"라고 말했다. 또 국민카드와의 통합문제에 대해선 "계획대로 9월 말께 이뤄질 것"이라며 "국민카드에 대한 추가 구조조정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내내 김 행장은 단 한 번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필요할 때는 메모지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자신의 의견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아직 회복이 덜돼 저녁 때 술도 못마시고 있다"는 얘기가 엄살처럼 느껴졌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