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ident@kdu.edu 내가 대학에 입학한 첫 학기에 여학생처장님의 호출을 받았다. 곧 처장실로 갔으나,처장님은 나를 찾은 일이 없다고 하셨다. 알고 보니, 내 이름을 보고 여학생임이 틀림없는데, 왜 가정학을 수강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실 참이었다. 그러나 출두한 학생은 분명 남학생이 아닌가. 우리 할아버님의 실수라고 변명을 하고,한바탕 웃었다. 그 이후 나는 그 분과 각별한 사이로 지냈다. 이제 나는 내 손자들의 이름을 지어야 하는 나이가 됐다. 할아버님이 하신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말아야 하겠고,세계화 시대에 살 아이들이니,세계 사람들이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작명(作名)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내 이름이 여자이름 같을 뿐만 아니라,음절이 길고 서양사람들이 발음하기 힘들기 때문에,그들은 나를 '롱 김(Long Kim)'이라고 부른다. 발음을 잘못하면 '길다'는 뜻의 '롱(long)'이 '옳지 않다'는 '롱(wrong)'으로 오해될 소지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작명 관행은 아직도 문중의 항렬에 따라 돌림자를 써야 하기 때문에 작명을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할아버님의 고충을 내가 손자를 본 후에야 알 것 같다. 작명이 어려운 것은 개인의 이름뿐만 아니라 책제목을 붙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이런 고충은 세계적인 석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케네디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캐나다 태생의 존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의 예를 보자. 그가 1929년에 쓴 책이 1954년에 이어 1997년에 다시 중판이 나왔을 때다. 보스턴 공항 서점에서였다. 그는 자기 책이 공항 책방에 전시되어 있는지가 궁금해서 책방주인에게 "저자의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자신이라고 말하기가 쑥스러워서) 책이름은 '대 추락(The Great Crash)'인데, 그 책이 이 책방에 있느냐?"고 물었다. 책방 주인은 의외로, "그따위 책은 취급하지 않는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갤브레이스가 말하는 '대 추락'은 '증권시장의 추락'을 뜻했지만, 서점주인은 '비행기의 추락'을 뜻하는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비행장에서 비행기의 추락에 관한 책을 팔 이는 없지 않겠는가? 공자의 '정명론'을 한번 생각해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