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대학의 '나도(me too)'주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동북아 경제중심,지역산업 혁신,신성장 동력과 관련한 정부의 구상들을 보면 빠지지 않는 메뉴가 하나 있다.
바로 대학이다.
동북아 경제중심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할 대학,지역산업의 혁신을 이끌 대학,신성장 동력의 씨를 뿌릴 대학을 각각 강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얼마 전 영국 옥스퍼드대 주최 원탁회의에서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대학도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 대학은 그동안 양적인 성장에 치우쳐 질적인 저하를 초래했다"며 "모든 대학이 공대 중심,대학원 중심 같은 개념이 유행처럼 번지는 등 서로 다른 대학을 모방하는 '나도(me-too)주의'가 한국 대학의 병폐"라고도 했다.
이 대목에서 대학에 대한 기대와 현실의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의 역할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임이 분명하다.
서구의 대학들을 보면 '교육'이란 임무에 '연구'라는 역할이 부가되면서 대학의 1차 혁명이 시작됐고,여기에 '경제발전'이란 임무가 더해지면서 2차 혁명이 일어났다.
대학이 수행하는 기초연구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1차 혁명 때의 얘기라면,그런 기초연구 성과의 상업화를 강조하면서 기업가형 대학이 출현한 것은 2차 혁명의 일이다.
지식생산의 모드(mode)가 고립형에서 개방형,순수성에서 유용성이라는 제2양식으로 변했다는 것도 대학의 역할 확대를 말한다.
흔히 선진국의 산학연 협력을 DNA의 이중나선 모형을 본떠 삼중나선 모형이라고들 하지만 '삼중'은 바로 대학의 역할 증대로 가능해졌다.
그러나 환상은 금물이다.
대학혁명으로 부각된 연구중심대학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다.
2천8백82개의 미국 대학(카네기 분류) 중 연구중심대학은 89개로 3%에 불과하고,특히 박사 인력을 배출하는 대학은 전체 대학의 10%에도 못미친다.
캐나다의 경우 7백여개에 달하는 기술대학 중 정부로부터 5백만달러 이상의 연구비를 지원받는 대학은 19개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30개 대학을 키운다고 하는데 이는 1천2백22개 대학의 2.5%다.
한마디로 연구중심대학은 그 특성상 소수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어떤가.
대부분 대학이 박사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 평가도 연구중심대학에 편향됐다는 지적이 많다.
한마디로 웬만한 대학은 모두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한다.
그 결과 해외로 빠져나가려는 인력을 붙들어둘 만한 연구중심대학이 나왔는가? 제대로 된 교육중심대학도 없다는 목소리가 기업에서 터져나오고 있고,될성부른 연구중심대학은 하향평준화되는 것만 같다.
짧은 역사 탓으로 돌리기에는 '나도 주의' 폐해가 너무 크다.
정부는 지금 수도권을 제외한 10곳의 지방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각 부처에서 지방대에 보낼 수 있는 연구개발비를 체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도 지역혁신체제와 대학을 말하고 있다.
지역의 단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혁신을 싫어하는 지역이 없을 것이고 보면 우리나라는 얼마나 많은 연구중심대학이 있어야 하는 걸까.
행정구역 단위마다 연구중심대학이 필요한지,연구중심대학이 있어야만 지역혁신이 되는지,지역혁신을 꼭 대학이 주도해야만 하는지 생각해볼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잉기대는 거품을 양산하기 십상이다.
정 총장은 97년 외환위기를 상기하며 그 때 우리 대학이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쳤다고 했다.
대학과 졸업생 그리고 기업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은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또 한 번 시기를 놓치면 정말 희망이 없을지 모른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