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좋은 모임] 젊은 출판경영인 뭉친 '책ㆍ만ㆍ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강가에 사는 사람은 수면만 봐도 강심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좋은 사람들의 만남도 그렇다.
젊은 출판 경영인 40명으로 구성된 '책·만·사'(책을 만드는 사람들).
이름에서부터 은유와 상징이 반짝인다.
'책을 만배쯤 사랑'하거나 '책만 사!'라고 꼬드기는 사람들.
벌써 10년째이지만 분위기는 늘 한결같다.
톡톡 튀는 대화에 발랄한 감수성,여기에 속깊은 배려와 폭넓은 우의까지 갖췄다.
강물로 치면 계곡과 들판을 지나 대해로 물살을 밀고 나가는 중이다.
연령은 30~40대.
이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 출판계의 폭과 깊이가 금방 드러난다.
컴퓨터 서적으로 출발해서 어학·실용서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길벗(이종원·모임의 대표간사),사회과학에서 인문·경제서 시장까지 점유율을 높여가는 일빛(이성우),'인물과 사상'으로 잘 알려진 뚝심의 사회과학 출판사 개마고원(장의덕),대중성과 전문성을 접목시키는 역사서 전문의 푸른역사(박혜숙),개성있는 '컬트 출판'의 지호(장인용),'ABC문고'등 글로벌 시리즈로 각광받는 창해(전형배),새로운 인문학의 지평을 열고 있는 그린비(유재건),기획력의 보고로 평가받는 휴머니스트(김학원),환경·문화재·교양과학까지 아우르는 창조문화(조미숙)….
경제·경영서 시장의 주역인 거름(하연수)과 더난출판(신경렬),새로운사람들(이재욱)도 중심 멤버다.
명진출판(한상만)은 불황 속에서도 '화'(틱 낫한 지음)를 밀리언셀러 반열에 올려놨고 청년정신(양근모)은 '협상의 법칙'시리즈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바다출판사의 김인호 대표는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로 '올해의 출판인상'까지 받았다.
지난 14일 홍대입구의 한 중국집.
제주도에서 2박3일간의 하계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온 멤버들이 '무용담'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안개 낀 한라산 등반길에 슬그머니 없어져 술판을 벌인 누구누구,우도행 뱃삯에 횟값을 얹어 흥정하던 순간,'가수' 전형배 사장의 한밤 노천 공연….
화제는 곧 책으로 모아졌다.
"이번 책은 특별히 애착이 가서 몇몇 지역에 전단지를 20만장 돌렸는데 결과가 어떨지…"
"오!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네요.어디 어디를 타깃으로 삼았어요?"
타고난 '출판쟁이'들의 대화는 파닥이는 물고기처럼 신선하면서도 창의적이었다.
이번처럼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에는 매월 첫번째 수요일 오후 4시에 월례모임을 갖는다.
두시간 정도 강연을 듣고 토론을 벌이며 정보들을 교환한다.
초창기엔 주로 출판 실무와 편집·디자인 등 세부적인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최근 들어서는 경영문제나 리더십 등 '큰 그림'을 그리는 쪽으로 바꿨다.
1년에 한두번은 원로들을 모신다.
지난해 박맹호 민음사 사장을 초청했을 때 "출판은 각자가 자신의 공화국을 만들어가는 행위"라는 구절을 듣고 신발끈을 새롭게 고쳐매던 순간은 모두가 잊지못한다.
좋은 모임의 진가는 어려울 때 잘 나타난다.
외환위기 여파로 자금난을 겪던 회원이 끝내 부도를 막지 못하고 낙향하려 했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머니를 털었던 기억.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는 출판사별로 직원들 이름까지 모두 적은 반전·평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책·만·사의 출발점은 우리 현대사의 물굽이와 맞닿아 있다.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과학 서적을 내던 몇몇 출판인이 광화문 근처 중국집에서 자주 만났다.
이른바 '의식 있는 출판쟁이'들이 짬뽕그릇을 앞에 놓고 "이대로는 안 된다.뭔가 제대로 좀 해보자"고 서로를 채찍질했다.
그렇게 해서 1993년 20여개 출판사 대표들로 공식적인 모임을 시작했다.
초대 대표간사였던 한철희 돌베개 사장을 비롯 창립멤버들의 감각은 지금도 청신하다.
세상의 강물에서 빛나는 언어를 낚아올리는 사람들.
이들의 책이 '미래의 바탕'이라면 그 갈피 속에서 꿈틀거리는 활자들은 곧 '희망의 돋을새김'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
[ '책.만.사' 회원 ]
개마고원 장의덕 / 거름 하연수 / 경당 박세경 / 그린비 유재건 / 길벗 이종원 / 길벗어린이 이호균 / 녹두 김덕균 / 다빈치 박성식 / 당대 박미옥 / 대청미디어 손형민 / 더난출판 신경렬 / 돌베개 한철희 / 명진출판 한상만 / 바다출판사 김인호 / 백의 유환옥 / 사군자 유중 / 사회평론사 윤철호 / 새로운사람들 이재욱 / 새물결 홍미옥 / 새터 서필봉 / 생활지혜사 김충선 / 서해문집 김흥식 / 예문 이주현 / 올림 이성수 / 일빛 이성우 / 일신사 윤백규 / 지성사 이원중 / 지호 장인용 / 창조문화 조미숙 / 창해 전형배 / 청년정신 양근모 / 푸른미디어 최세정 / 푸른솔 박홍주 / 푸른역사 박혜숙 / 한나래 이리라 / 한울 고경대 / 한울림 송주한 / 해바라기 양상호 / 혜지원 박정모 / 휴머니스트 김학원 / 한겨레합동법률사무소 정지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