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를 확정하기 바로 전날인 지난 23일.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선 '한·미 통상현안과 해법' 세미나가 열렸다. 미국 공화당 통상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 알려진 마이클 영 조지워싱턴대 법대학장이 주제발표자로 나섰다. 영 학장의 초점은 '시장개방'이었다. 그는 "한국은 세계 여러나라로부터 '억지로라도' 시장문을 열도록 해야 하는 나라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일본이 장기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문을 꼭꼭 걸어잠근 탓"이라고 강조했다. 영 학장은 "한국 기업들은 내수 시장을 보호해달라고 정부에 조를게 아니라 닫혀있는 해외 수출시장을 열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까지 했다. 딴은 잘못된 말은 아니었다. 국내총생산(GDP)의 70% 이상이 통상에서 나오는 현실에서,게다가 내수경기와 투자가 꽁꽁 얼어붙어 경기회복을 위해선 수출확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영 학장의 조언은 새겨들을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ITC의 최종판결 소식을 전해듣고는 '속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ITC의 판결은 결국 미국 내수시장을 미국 정부가 보호하겠다는 의지 확인에 다름 아니었다. 미국 기업들의 로비 결과인 것도 분명했다. 영 학장의 조언은 '실리따로,명분따로'가 된 셈이었다. 박노형 고려대 법대 교수는 "미국 정부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기업이 돼서 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기업들이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어도 '로비'를 해야 정부가 움직인다"고 말했다. '약소국'인데다 정부와 기업의 손발마저 제대로 안맞으니 앞으로도 '당할 일'이 적잖을 것이란 걱정이 들었다. 장경영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