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과 놀이'전에 출품된 권기수씨의 작품은 만화와 비슷하다. '동구리' 시리즈로 알려진 만화캐릭터는 시종 웃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애니메이션이나 인터넷 공간에 범람하는 이미지와 구별하기 힘들다. 요즘 전시장에는 만화 같은 그림들이 자주 등장한다. '미술과 놀이'전에서는 권기수뿐 아니라 김학민 조범진의 작품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을 등장시켰다. 서양화가 이동기씨도 만화인지 미술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아토마우스(Atomaus)'로 잘 알려져 있다. '아토마우스'는 일본 만화의 전설적 존재인 데쓰카 오사무의 '아톰'과 미국 월트 디즈니의 '미키마우스'를 합친 캐릭터.눈에 익숙한 이미지에 화려한 색깔이 자연스럽게 친근감을 주는 그림이어서 판매 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뉴욕에서 회화를 전공한 박미나,물감을 뿌리는 기법으로 꼬마 유령 '캐스퍼'를 형상화하는 박관욱,작가이면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강영민씨 등도 만화 같은 그림들을 그리는 작가다.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만화 같은 그림 제작이 유행하고 있는 것은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젊은 작가들은 영화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매체가 보편화된 대중문화 시대에 대중과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그 한가운데 서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전당 감윤조 전시기획과장은 "젊은 작가들은 유희나 놀이와 같은 태도를 갖고 시각 이미지에 접근한다"며 "예술이 일종의 유희라는 측면에서 보면 피카소가 자전거 손잡이와 안장으로 '황소의 머리'라는 작품을 제작한 것과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전시기획자 조관용씨는 권기수의 '동구리'에 대해 "과장된 두상,만화처럼 단순화한 몸통과 팔다리는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상품 캐릭터의 전형"이라고 진단한다. 권씨는 실제로 '동구리' 캐릭터를 팬시상품으로 개발해 판매 중이다. 이들의 만화 같은 그림은 '너무 가볍다'는 일부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따분한 미술이 아닌 재미있는 미술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시장을 가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웬만한 그림은 다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미술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