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이 10년 넘게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일본에서는 최근 보는 이들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할 만한 기상천외의 광경이 하나 벌어졌다. 2가구만 내부를 공개한 도쿄 외곽의 신축 맨션을 구경하기 위해 인파가 구름처럼 몰린데 이어 너도 나도 분양신청에 가세하면서 경쟁률이 최고 3백대 1까지 치솟은 것.한국의 인기아파트 청약현장을 방불케 할 만큼 분양열기가 후끈 달아오른 배경은 이랬다. 도쿄도주택공급공사는 도쿄 외곽 다마 뉴타운에 지난 95년 3개동 총 1백35가구의 맨션을 지었지만 이중 65가구가 8년이 넘도록 팔리지 않았다. 이들 빈집은 관리유지비로 연간 5천만엔씩을 집어 삼켰다. 견디다 못한 주택공급공사는 묘수를 짜냈다.원래 분양가의 평균 30%에 입주자를 모집하는 한정판매 땡처리였다. 방 두칸에 주방이 딸린 전용면적 24평 크기의 맨션은 준공 당시 5천1백89만엔이었으나 공사는 이를 약 75%나 싼 1천3백12만엔까지 값을 낮췄다. 전략은 보기좋게 들어맞았다. 맨션 현장은 연일 인파로 북적댔고 사람들은 "부동산 값이 바닥 신세라 해도 이게 웬 횡재냐"며 앞 다퉈 분양사무실을 노크했다. 맨션 땡처리는 화제 뉴스에 목말라하던 일본 언론의 비상한 관심 속에 28일 성공적으로 끝났다. "비싼 값을 주고 산 우리는 뭐가 되느냐"는 초기 입주민들의 원성과 분노가 극에 달했지만 공사는 맨션 현장에서 하려던 추첨을 본사로 옮겨 65명의 새 주인을 골라냈다. 틈만 나면 아파트값이 들썩거리는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맨션 땡처리는 부동산 버블 붕괴의 상처와 후유증이 지금도 일본을 옥조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일본에선 주택보급을 담당한 공공기관들이 재고 맨션 처분을 위해 할인 판매에 나서는 사례가 97년부터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초기 입주민들은 자신들만 바가지를 썼다며 법정싸움을 불사, 소송이 빈발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쌓아놓은 개인 금융자산은 1천4백조엔으로 부동의 세계 1위다. 하지만 국민들이 돈을 움켜 쥐고도 집을 사지 않아 땡처리까지 등장한 일본과 망국적 투기열풍에 서민들만 한숨짓는 한국은 너무도 속사정이 다른 나라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