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장자(莊子)' 가운데 여러 편에 나오는 이 무하유지향은 글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곳을 뜻한다. 한계가 없는 무(無)의 세계,혹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이상향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도 많지만 그저 아무도 없는 한없이 넓은 땅 정도로 해석해도 좋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곳은 별로 없다. 세상은 남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때론 남의 것을 빼앗지 않으면 내 것을 빼앗기는 냉혹한 현실일 뿐이다. 노장사상이 경세(經世)의 주도 이데올로기가 되지 못하고 유가나 법가 등에 그 자리를 내준 것은 이렇게 현실적인 결함이 커서다. 특히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Winner takes all)' 논리가 일반화되고 있는 요즘 현실에서는 무하유지향은 현실 도피를 꿈꾸는 사람들의 소극적인 대안일 뿐이다. 묘한 것은 경영자들 가운데 마치 무하유지향에 사는 것처럼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곳곳에서 이런 경영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무하유지향에서 지내는 경영자들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내 일''우리 제품''우리나라 인프라'만 열심히 잘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 경영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우리 회사 제품만 전국 최고 수준으로 만들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 회사 제품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나라 경영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국제적인 수준의 허브공항을 만들면 세계 모든 나라의 비행기가 우리 공항을 이용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그런 '순진한' 시각의 예가 될 것이다. 최근의 동북아 허브 논의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동북아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갖추는 데만 집중할 뿐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러시아 등 주변국의 움직임에는 애써 눈을 감는 형국이다. 경쟁이란 결정적 변수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 나만 잘하면 고객들이 인정해줄 것이란 '순진한 믿음'이 문제다. 우리 회사,우리 조직,우리나라가 '원하는 대로' 고객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경영자들이 말로만 경영마인드를 얘기할 뿐 실제 경영에 관한 한 기본 학습이 부족한 것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한 벤처기업가는 "투자유치를 하려고 만난 경영자들 중에 기본 중의 기본이랄 수 있는 '다섯가지 힘(five forces)' 등에 대해 듣도 보도 못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 놀랐다"고 말했다. '다섯가지 힘'은 하버드대의 경영전략이론가 마이클 포터 교수가 만든 이론으로 산업에 신규 진출할 때 매력도를 따져보는 방법론.포터 교수는 공급자의 힘,수요자의 힘,진입장벽의 정도,대체재의 수준 등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산업 내의 경쟁관계'를 들었다. 경쟁이 심하면 다른 네 가지 모든 조건이 좋아도 신규시장 진입에는 좋은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이론으로 소개된 지가 30년이 가까워온다. 대안은 있다. 전략을 짜고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 나만의 시각이 아니라 경쟁자의 시각을 항상 고려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나는 어떻게 움직일까'가 아니라 '남들은 어떻게 움직일까'를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할 최우선 명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영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부의 일보다는 외부의 일,나라 정치보다는 외교쪽을 더 중시하는 더 큰 스케일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 일,우리 사업이 아니라 경쟁자의 소리가 들리고 경쟁국의 움직임이 보일 것이다. 경쟁자가 없는 무경쟁,독점은 경영자들의 꿈일 뿐이다. 무하유지향이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이상향인 것처럼 말이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