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쓰듯 쓴다'는 건 옛말이다. 공기도 더 이상 무한재가 아니다. 몇년 전만 해도 '대동강 물 파는 일'로 여겨졌을 법한 공기 장사가 시작됐을 정도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경우 온종일 안개가 낀 듯 뿌연 날이 많다. 눈에 안보이는 미세먼지(지름 10㎛ 이하) 탓이다. 미세먼지는 시야를 가릴 뿐만 아니라 천식을 비롯한 호흡기 질환과 각종 알레르기 질환 등을 일으킨다고 한다. 공기가 나빠지면서 국내의 소아 천식은 80년대 3∼4%에서 현재 10%를 웃돌고,원인불명의 아토피 피부염 또한 급증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중증 아토피 환자가 서울 경기 울산에 집중돼 있다는 보고도 나왔다. 미세먼지가 공기보다 수백배 이상 농축된 형태의 발암물질을 함유, 암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는 발표도 있다. 서울대와 아주대 의대팀이 서울 대전 충주 등 6개 도시 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미세먼지가 많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암 발생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지역 사람보다 4배나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시내 지하철역의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한 결과 조사 대상 승강장의 23.5%가 인체에 유해한 기준치 1백50㎍/㎥를 초과했다는 소식이다. 안그래도 서울의 연간 평균 미세먼지 오염도가 ㎥당 71㎍으로 미국 환경청 기준치(15㎍)의 4.7배 이상인데다 런던ㆍ파리(20㎍)의 3배가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최악이어서 '먼지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마당이다. 공기가 이렇게 엉망인 건 자동차 매연과 각종 공사장의 비산먼지,노천 소각 증가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아침 저녁이면 여기저기서 폐기물을 마구 태우는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공사장마다 흙먼지 투성이다. 한동안 '우리는 비산먼지를 날리지 않습니다'라고 써붙이더니 그나마 유야무야됐다. 환경부가 올 안에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 방침이라지만 법만으로 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공기오염은 기실 핵보다 더 위험하다고 하는 만큼 정부의 노력에 기대기에 앞서 온국민이 맑은 공기,파란 하늘 만들기에 앞장설 일이다. 온 나라 공기가 더러운데 내 집에만 공기청정기를 놓는 게 무슨 소용이랴.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