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민투표 실효성있게..金秉燮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현안에 대해 주민들이 직접 투표로 결정하는 주민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올해 정기국회에 주민투표법안을 제출해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하는 일정을 발표했다.
주민투표제는 주민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치로,스위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오래 전부터 시행돼 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그 필요성을 인정해 지난 94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주민투표제의 도입 근거가 마련된 바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항에 관해서는 따로 법률로 제정하도록 입법의무를 부과하였으나,그 이후 후속법이 마련되지 않아 그동안 시민단체 등에서 주민투표법의 제정을 요구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주민투표법이 제정된다면 지방자치제도 발전에 하나의 중요한 진전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주민투표법 제정은 환영받는 사항임에 틀림없지만,문제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극복하고 그 의미와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주민투표법을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첫번째 이슈는 주민투표의 대상과 관련된 것이다.
행정자치부에 의하면 주민투표에 적용되는 대상은 쓰레기 매립장 등 공공시설의 설치·이전,읍·면·동 통·폐합과 분리 등 자치단체 고유권한에 속하는 사무로 한정된다.
이러한 행자부의 예시 사항들은 이미 그동안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투표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들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사무가 아닌 국가사무는 주민투표 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자치사무의 비중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주민투표의 대상도 현저히 제약받게 된다.
따라서 주민투표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제도 도입에 앞서 또는 그에 맞춰 국가사무를 지방에 대폭 이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선택의 범위를 확대한 가운데 해당 시·도나 시·군·구가 조례로 투표 대상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다음,주민투표의 청구권자와 관련된 사항이다.
행자부에 의하면 단체장,지방의회,일반주민 3자가 공히 주민투표 실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되,주민투표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 요건을 다소 까다롭게 하고 있다.
단체장은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어서 투표청구를 할 수 있고,지방의회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하고 있다.
주민청구 요건도 투표권자 총수의 5분의 1 범위 안에서 결정하도록 해 다소 까다롭다.
그런데 주민청구 요건 20% 이내는 지방자치 선거 참여율과 주민투표의 취지를 감안할 때 다소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청구 요건을 보다 까다롭게 할 것인지 아니면 보다 완화시킬 것인지는 시민의식의 수준과 함께 주민투표의 효력을 프랑스나 영국처럼 구속력을 부여하지 않는 자문형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독일 오스트리아처럼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유형으로 정할 것인지 등과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항들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20% 범위는 그것이 비록 예시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가령 미국이 주민투표의 청구 요건으로 유권자 수의 1~5% 서명으로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다소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또 주민투표는 자치단체 관할구역 전체를 단위로 실시하도록 돼 있는데,같은 자치단체라도 특정지역만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이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사안을 전체 주민투표에 회부할 경우 소지역주의 문제 또는 소수자의 권리 침해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일부에서 화장장 쓰레기매립장 등 각종 공공시설 입지와 관련된 갈등을 주민투표를 실시해 지자체 주민 스스로의 권한과 책임하에 정책을 결정함으로써 이를 조정 통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다수의 이익을 위한 소수의 권리침해가 문제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사안별 투표 단위를 어떻게 해야할지 신중한 접근과 연구가 필요하다.
모쪼록 충실한 법안이 만들어져 주민의 권한과 책임이 한결 성숙해지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