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로 통칭됐던 무선호출기를 찾아 보기 힘든 시대다. 그렇지만 리얼텔레콤(대표 백원장)은 골동품 취급을 받고 있는 삐삐에서 성장 사업을 착안했다. 이 벤처기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무선호출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이 회사의 고객 수가 바로 한국의 삐삐사용자 숫자이다. 리얼텔레콤에 따르면 증권투자 전용 무선호출기를 제외할 경우 일반 삐삐 사용자는 현재 6만8천명이다. 이중 절반이 의사와 간호사들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백원장 대표(41)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마친 공학박사다. 외국어대 산업공학과 교수를 지내다 벤처기업인으로 변신한 최고경영자(CEO)다. 백 대표는 삐삐 자체가 사양길로 접어든 사업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리얼텔레콤은 삐삐 통신망을 이용해 미래 성장산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 대표는 "삐삐 사용자는 현재도 월 2천명 정도 감소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그의 감(感)으로는 3만명 수준으로까지 줄어들 것 같다고 한다. 1997년 사업자 수만 20개사에 달하고 가입자 수는 1천5백20만명이었던 삐삐 전성기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백 대표는 "기존의 삐삐서비스 분야엔 최소한의 투자를 하는 대신 무선호출망을 활용한 교통정보 콘텐츠 제공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보급되면서 교통정보 콘텐츠 공급이 고수익 사업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시내의 교통정보를 효율적으로 수집한 후 이 콘텐츠(교통정보)를 순식간에 뿌려주는 데 있어 삐삐망이 효율적이라는 게 백 대표의 얘기다. 그는 "오래 전부터 양방향으로 데이터 교환이 가능한 013번호의 무선 데이터망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광범위하게 데이터를 전달해줄 수 있는 012번호의 삐삐망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통상황을 수집한 다음 이를 분석해 효율적으로 전송하는데 필요한 금상첨화의 '도구'를 갖추고 있다는 주장이다. 리얼텔레콤은 서울지역의 시스템 구축작업을 마무리하는 중이며 내년부터 이 교통정보 콘텐츠 사업분야에서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2백40억원. 아직까지 수익성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다른 사업자들이 삐삐사업에서 철수하기 시작한 2001년 4월에 후발주자로 삐삐를 취급한 이후 적자폭을 줄이는데 만족해왔다. 이 회사의 매출액 중 60%는 증권투자 전용 삐삐가 차지하고 20%는 일반 삐삐 사용료에서 나온다. 나머지 20%는 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양방향 데이터 통신서비스 수입이다. 백 대표는 교통정보 콘텐츠 사업으로 매출 구성을 '첨단'으로 바꾸는 것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 벤처기업이 '삐삐의 추억'에서 성공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