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를 끌어다 기업을 인수해 회사자금 횡령 및 주가조작 등으로 이득을 취한 뒤 껍데기만 남은 기업을 되파는 방식으로 수백억원을 챙긴 전문 기업사냥꾼들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지검 금융조사부(이인규 부장검사)는 31일 기업 인수ㆍ합병(M&A)을 빙자해 8백50억원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기업대표 9명을 적발, 이 가운데 상장기업인 베네데스 대표 최모씨(43) 등 7명을 구속하고 4명을 지명수배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적발된 기업대표 대다수가 해외유학까지 다녀온 정보기술ㆍ해외금융 전문가라는 점에 주목,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 피해사례 =이번에 적발된 기업 중에는 베네데스를 비롯 코스닥 등록업체인 고려전기와 퇴출된 5개 코스닥 등록업체도 포함돼 있다. 베네데스의 대표였던 최씨는 지난해 10월 사채업자들로부터 80억원을 빌려 회사를 인수한 뒤 회사자금 1백10억원을 빼돌려 사채 및 개인채무 변제에 사용한 혐의로 구속됐다. 또 지난 2001년 컴퓨터 부품업체 유니씨앤티를 인수한 백모씨(44)도 사채를 끌어들여 경영권을 확보한 뒤 회사자금 1백8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삼성전자 등에 반도체 장비를 납품하는 건실한 업체였던 다산C&I도 김모씨(39ㆍ구속) 등 2명에 의해 6개월간 3번에 걸쳐 '인수-횡령-매각'을 되풀이하는 속칭 '폭탄돌리기'식 M&A를 당하는 바람에 부도를 내고 파산절차를 밟고 있다. 이밖에 지난 2001년 카리스소프트를 인수한 윤모씨(33)는 회사자금 26억원을 횡령하고 가장납입으로 발행된 주식 1백만주를 개인채무 변제에 사용한 혐의로 구속됐다. ◆ 기업사냥 수법 =기업사냥꾼들은 대주주와 짜고 사채로 마련한 계약금을 주고 경영권을 확보한 뒤 회사예금 및 어음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는 방식으로 인수대금 및 사채이자를 지급했다. 자기 돈 하나 안들이고 회사를 인수한 뒤 회사가 가진 자산을 마치 개인금고인 것처럼 통째로 거덜낸 것이다. 카리스소프트와 유니씨앤티의 경우 기업사냥꾼들은 M&A 사실을 미리 유포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유상증자를 통해 들어온 자금을 횡령하는 수법으로 이득을 챙겼다. 유니씨앤티는 현금만 1백85억원을 가진 초우량회사였으나 백씨 등 기업사냥꾼 3명이 속칭 '폭탄돌리기'식 M&A를 통해 자본금을 모두 빼돌려 결국 회사가 부도나는 사태까지 빚었다. 특히 고려전기를 인수한 조모씨(29)의 경우 회사자금으로 양도성 예금증서(CD)를 발행한 뒤 이를 담보로 대출받고 회계상으로 CD가 회사에 남아 있는 것처럼 꾸며 횡령 사실을 숨기는 최신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 피해 예방책 =검찰은 이들 기업사냥꾼의 거액 횡령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이인규 금융조사부장은 "최대주주의 교체가 잦거나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가 잦은 기업, 비상장기업에 대한 투자가 많고 공시했던 내용에 대한 철회가 잦은 기업 등은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증권 전문가들은 이같은 범죄의 원인은 대주주의 전횡이 가능한 기업지배구조에 있다고 지적한다. 성종률 대우증권 M&A팀 부장은 "규모가 작은 일부 코스닥 등록업체나 일반기업은 회사 의사결정 과정을 감시하는 이사회나 소액주주들의 권한이 제한돼 있다"며 "기업 내부정보를 정확히 공시하도록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