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인수·합병(M&A)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명분 아래 회사 정관에 독소 조항(Poison pill)을 삽입하는 코스닥 기업이 늘고 있다.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교체되면 수십억원의 위로금을 지급해야 한다든지 주주 90%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 이같은 정관 조항은 건전한 M&A를 통한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하는데다 자칫 '대주주의 돈 챙기기'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와 향후 논란거리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포이즌 필' 사례=적대적 M&A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골든패러슈트'(Golden parachute)와 '초다수결의제'가 이용되고 있다. 골든패러슈트는 적대적 M&A를 통해 기존 대표 등 이사진을 교체하려면 거액의 위로금을 지급토록 하는 것이다. 초다수결의제는 이사진 교체에 필요한 주주 찬성률을 대폭 높여 주총 안건통과를 어렵게 만드는 방식이다. 한빛네트는 지난 31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골든패러슈트 조항을 정관에 신설했다. 이 회사는 '이사가 임기중 적대적 M&A로 인해 실직할 경우 통상적인 퇴직금 외에 퇴직보상액으로 이사진에 20억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정관에 삽입했다. BET도 지난 24일 대표이사가 임기만료나 자발적 사임이 아닌 다른 사유로 퇴임할 경우 50억원의 퇴직 위로금을 지급토록 한 정관을 신설했다.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기업은 지난해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된 옵셔널벤처스다. 이 회사는 대표이사가 임기만료나 자진퇴임 외의 사유로 퇴임한 경우 퇴직금 외에 50억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도록 정관에 명시했었다. 테스텍은 작년 11월 적대적 M&A로 이사진을 교체할 경우 주총 출석주주의 90% 이상,발행주식총수의 70%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하는 조항을 정관에 삽입했다. ◆문제점=국내에서 처음으로 골든패러슈트를 도입했던 옵셔널벤처스가 이를 회사 자금 횡령 수단으로 악용한 전력이 있다. 옵셔널벤처스는 지난 2001년 골든패러슈트를 정관에 신설한 뒤 당시 대표이사가 이 규정을 근거로 46억원을 챙겼다. 증권가에서는 골든패러슈트가 주주 가치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량기업에 M&A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드는데다 회사 현금이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골든패러슈트를 도입한 기업들이 대체로 적자상태고 대표이사가 수차례 바뀌는 등 경영이 불안하다는 사실도 문제로 꼽힌다. 한빛네트는 지난해 3억5천만원의 적자를 냈고 올 1·4분기에도 6억원의 순손실을 입었다. 올 들어 최대주주가 한차례,대표이사는 세차례나 바뀌었다. BET는 지난 2001년과 2002년 각각 1백51억원과 7백67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 1분기에는 6억6천만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 회사도 올 상반기 최대주주가 변경됐고 대표이사는 두차례 바뀌었다. 증권사 M&A팀 관계자는 "코스닥등록기업의 경우 M&A를 막을 게 아니라 오히려 활성화해야 한다"면서 "골든패러슈트나 초다수결의제 등이 주주와 개인과의 사적인 계약이라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악용의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