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다란 길을 한걸음씩 오른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다. 그래도 산길은 환한 느낌이다. 양쪽으로 늘씬하게 뻗어 올라간 소나무 덕택이다. 소나무의 푸른 잎과 시원한 줄기를 보면 기분은 항상 상승세를 탄다. 논산8경의 8번째 경관인 노성산성 오르는 길.옛 백제군의 함성은 간 데 없고 주변은 너무도 고요하다. 발걸음 소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나비들이 화들짝 놀라 흩어진다. 땀이 등허리에 찰 때쯤 길다란 나무의자 2개가 나타난다. 벤치 한쪽엔 물통이 놓여있다. '약수를 뜨러 온 동네사람 것이려니….' 그런데 주변엔 아무도 없다. 산길을 오르는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가 매일 물을 떠 놓는다는 동행의 설명이다. '아! 산은 사람을 어질게 하는구나.' 4천년 우리 역사를 통해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를 가른 땅 논산.이곳에서는 한반도의 통일이 두 번이나 이뤄졌다. 백제의 계백장군은 황산벌에서 마지막 격전을 치르고 신라에 영토를 넘겨야만 했다. 1천년 뒤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을 같은 장소에서 누르고 통일 고려를 이뤘다. 왕건은 그래서 이곳에 개국사찰인 개태사(제6경)를 세웠다. 논산 8경의 으뜸은 관촉사.국내 최대(18m)인 은진미륵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불을 보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목종 9년(1006)에 완성된 뒤 1천년의 세월동안 한자리에서 묵묵히 기도를 들어준 불상과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경내로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든 '해탈문'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국내에서 3번째로 큰 저수지라는 탑정호는 주변경관도 아름답지만 겨울이면 4만여마리 철새들이 찾아 장관을 이룬다. 겨울에도 잘 얼지 않는다는 이곳은 천연기념물인 원앙,흰 큰고니,가창오리 등이 서식한단다.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대둔산은 수려한 계곡이 일품이다. 어디에선가 쏟아져 내린 듯한 거대한 바위들.그 양쪽으로 솟은 계곡은 계절 따라 색을 바꿔가며 산길의 동행자가 된다. 이 밖에 대웅전 전체가 나무조각 예술품인 쌍계사와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의 옥녀봉,계백장군의 마지막 혼이 깃든 계백장군 전적지 등이 논산의 대표적 볼거리 '8경'을 이룬다. 논산=글 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