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 지방분권위원회는 참여정부 개혁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국민소송''주민소송'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 달 29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재정·세제개혁 로드맵'에는 예산 불법집행에 대한 시민감시와 국민소송제도의 도입을 검토,2004년부터 법제화해 시행한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예산 불법 집행에 대한 시민 감시 및 국민소송제도'는 대체로 미국에서 발전된 주법상의 '납세자 소송' 또는 연방부정청구법(the Federal False Claims Act)에 의한 '키탐'(qui tam)소송 같은 소송제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미국에선 1847년 뉴욕시 시장을 피고로 하는 납세자소송이 처음 인정됐고,같은 해 매사추세츠주가 지자체의 예산남용에 대한 납세자 소송을 허용하는 성문법을 제정했다.그 후 모든 주에서 지자체 차원의 납세자소송이 도입되고 주 차원에까지 확산됐다. 지자체 및 주 차원의 납세자 소송은 불법적 행위뿐만 아니라 낭비적 행위까지 대상으로 하고,재무뿐 아니라 비재무적 사항에 대해서도 소제기가 허용되며, 소송의 유형도 매우 다양하다. 반면 '내부고발자 소송'으로도 불리는 '키탐'소송은 연방정부의 사업이나 계약에 관한 사기 등 부정이 있을 경우 정부를 대신해 그 부정행위자를 피고로 삼아 제기하는 공익소송의 일종이지만 조세포탈, 낭비, 부실운영의 경우까지 미치지는 않는다. 일본은 1948년 미국 납세자소송을 모델로 주민소송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우리도 재정운영에 국민 참여를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납세자소송제 도입 요구가 시민단체 중심으로 제기됐고,그 결과 2001년 의원입법으로 '납세자 소송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역대정권을 통틀어 통상적 제도를 통해 중앙정부나 지자체 수준에서 자행되는 재정상 부정행위나 비리들이 실효적으로 통제 또는 제재를 받았다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재판을 통한 통제는 국민이나 납세자 개개인이 직접 권익침해를 입었다고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관철되기 어렵다. 미국 일본에서 재정통제를 위한 공익소송제가 일찍이 도입된 배경도 바로 거기에 있다. 피해자가 분명하지 않아 적발되기 어렵고 또 적발돼도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국가재정상 부정 비리는 시민사회의 힘을 활용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대안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이 제도를 도입한 나라들이 거둔 성과는 혁혁했다. 미국은 지난 17년간 연방부정청구법과 키탐 조항의 시행으로 무려 1백억달러 이상의 이득을 얻은 것으로 보고됐고,일본 역시 흥미진진한 사례들을 남기며 뚜렷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내 첫 납세자 소송으로 불린 경기 하남시의 환경박람회 관련 예산낭비에 대한 소송은 안타깝게도 원고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되는 운명을 맞았다. 납세자소송제도가 법제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부정·비리, 낭비를 통제하고 방지한다는 제도 취지로 보나 개혁정책의 맥락에서 보나 이 제도의 도입에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판결 결과 진행중인 사업이 중단될 수도 있고,이미 사업이 끝난 경우에는 형사처벌과 별도로 해당 공무원이나 기업이 배상책임을 질 수도 있다. 소송으로 예산집행에 관여한 공무원 개인이나 기업에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기에 매우 강력한 감시와 통제가 가능해 지고 파급효과 또한 엄청날 것이다. 물론 부작용도 예상된다. 중복·과잉감시로 사회경제적 비효율과 경직성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고 그렇지 않아도 사회 곳곳에서 분출하는 갈등 상황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저항수단으로 남용될 여지도 없지 않다. 보상금을 노려 마구잡이로 소를 남발할 경우 법원의 부담가중은 물론 행정 마비라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면밀하고 신중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소송의 대상,제소 자격 및 기간,판결의 효력과 집행,소송비용 등 절차뿐 아니라 남용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실체법적 장치까지 철두철미한 법정책적 설계와 준비가 필수적이다. 미국 일본 등 외국의 제도와 시행경험을 참조하되,우리 실정에 맞고 제도 본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대안,특히 정기능을 극대화하고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화의 수준과 방향,내용을 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