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채용정보회사인 잡링크의 김현희 실장은 요즘 전화통을 붙들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올 하반기 신입사원을 뽑겠다고 예고했던 회사들이 채용계획 자체를 철회하거나 모집인원을 대폭 줄이는 바람에 취업희망자들의 항의전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신문에 공고를 낸 업체들조차 채용계획을 보류하거나 수정한 곳들이 적지 않다"며 "취업하려면 외환위기 때처럼 몇백 대 1의 경쟁률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보다 경기가 더 나쁘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 4명중 1명은 '백수' 신세이고 시장 상인들도 매상이 줄어 울상이다. 중소기업인들은 사상 최저금리를 '남의 나라 일'로 여긴다. 경기가 '뜨거운 아랫목'과 '고드름이 달릴 정도로 냉랭한 윗목'으로 나뉘는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통계만 놓고 보면 경제는 그런대로 잘 굴러가고 있다. 지난 6월 실업률은 3.3%로 5년전인 98년 6월(7.1%)의 절반 이하다. 그러나 구직자들의 체감 실업률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청년(15∼29세) 실업률이 7.2%(5월)에 달하고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한 사실상 실업률은 24.5%에 이른다는 지적도 있다. 고용 구조가 바뀐 것도 체감실업률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들이 대규모 공채대신 수시채용이나 경력사원 채용으로 대거 돌아서고 있다. 임시ㆍ일용직 등 비정규직도 대폭 늘어 대학을 막 졸업한 사람들이 '괜찮은 직장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한국은행이 매달 집계하는 부도율도 '통계와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기는 마찬가지다. 부도율 자체는 사상 최저 수준(상반기 평균 0.09%)이지만 중소기업들의 체감경기는 꽁꽁 얼어 있다. 인천에서 전기안정기를 생산하는 S사 김 모 사장은 요즘 불면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01년 부도난 회사를 다시 일으켰는데 최근 다시 부도 위기에 빠져있다. 은행에 대출을 요청했지만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은행들이 대출세일을 한다지만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김 사장은 "외환위기도 견뎌냈는데 이 정도쯤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판매나 자금사정은 그때보다도 더 나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하락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초 3.12%이던 연체율이 6월엔 절반이하인 1.48%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돈을 떼일 위험이 있는 중소기업은 아예 외면하거나 연체대출금 회수에 몰두해 연체율만 낮췄을 뿐이다. 최근 신용보증기금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2천여 업체중 40.9%가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애로사항으로 '담보 부족'을, 14.9%는 '높은 금리'(14.9%)를 꼽았다. 외환위기 직후 중소기업들의 하소연과 비교해 달라진게 없다. 정작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은 돈 구경 하기가 외환위기 때 못지 않게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이근경 금융통화위원은 "신용등급이 낮거나 담보가 없는 중소기업은 자금 변통이 안돼 도산위험에 방치돼 있다"며 "은행들이 무조건 신용도가 낮다고 외면할게 아니라 신용등급별 도산율에 대한 경험치를 토대로 대출금리를 차등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가 지표에서도 '착시 현상'은 마찬가지다. 소비자물가가 4개월 연속 하락(전월대비)했는데 체감물가는 오히려 올랐다는 사람들이 많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집값이나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서울 버스ㆍ지하철 요금이 3월부터 1백원씩, 하수도요금은 6월부터 22% 각각 인상됐다. 김영배 한국은행 물가분석팀장은 "몇 년에 한번 사는 자동차 가전제품 가격이 내려 물가지수를 떨어뜨렸지만 구입빈도가 높은 품목은 오히려 올라 체감물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주가도 연중 최고치로 올랐지만 "내가 갖고 있는 주식은 다 내렸다"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7월중 삼성전자 포스코의 종합주가지수 상승률 기여도가 60%에 달하고 나머지 종목은 상대적으로 상승폭이 작거나 오히려 내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수치로 나타나는 경기지표는 평균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아랫목'과 '윗목'의 괴리가 갈수록 커질수록 윗목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한겨울일 수밖에 없다. 현승윤ㆍ안재석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