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회장 '충격'] '정몽구 회장의 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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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家)'의 맏형인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5일에도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빈소를 지키며 사태수습에 앞장섰다.
정몽구 회장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자리에서는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측근들은 정몽구 회장이 정몽헌 회장과 껄끄러워진 관계를 끝내 풀지 못하고 동생을 먼저 떠나보내게 된데 대해 매우 가슴 아파 하면서도 장자(長子)로서의 책임감을 다하려 한 때문으로 해석했다.
정몽구 회장은 동생의 투신 소식이 알려진 지난 4일 가장 먼저 서울 계동 사옥에 도착해 시신수습 현장을 직접 챙겼다.
빈소에서도 조문객들을 맞아 수저를 직접 챙기고 술잔도 채워주는 등 슬프고도 힘든 하루를 보냈다.
정몽구 회장은 5일에도 아침 일찍부터 빈소를 지키며 먼저 간 동생의 명복을 빌었다.
또 이상주 전 교육부총리 등 조문객들을 몸소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정몽구 회장은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연신 훔치는 등 슬픔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 여러차례 목격되기도 했다.
지난 2000년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감정의 골이 패이기는 했지만 정몽구 회장은 장자로서 동생의 어려움을 도와주려고 무던히 애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동차운반선을 팔려던 지난해 7월, 정 회장은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5년간의 장기공급계약을 맺고 인수업체에 20%의 지분을 참여하는 등 매각 성사를 위해 애를 썼다.
또 올해 초 자금난에 시달리던 정몽헌 회장이 경기도 용인의 개인 토지를 처분하려 하자 현대모비스가 이를 사들인 것도 정몽구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을 현대차가 매입한 것도 장자로서 소임을 다하려 한 측면도 있었겠지만 동생을 도우려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는게 재계의 평가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82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몽필 전 인천제철 사장이 교통사고로 불의의 죽음을 맞은 뒤 맏형으로서 가족들을 보살피는데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지난 90년 자살한 동생 몽우씨의 자녀인 정일선 BNG스틸 부사장과 정문선 BNG스틸 재정부 차장 등을 계열사 요직에 앉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번 장례절차도 정몽헌 회장이 몸담고 있던 현대아산의 주관으로 진행키로 했으나 현대ㆍ기아차 직원들을 빈소에 대거 투입하는 등 현대차그룹이 대대적인 측면지원에 나선 것도 정몽구 회장의 깊은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 고위 관계자는 "정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가장 상처를 입은 사람은 정몽구 회장"이라며 "세간의 평가가 어떻든 동생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고 자신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늘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한 측근은 "개인적으로야 동생을 돕고 싶지 않았겠냐"며 "개인적 감정보다는 기업경영이 더 중요하다는 경영진 및 참모진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사업을 포함해 현대그룹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외국인 지분이 절반이 넘는 현대차로서는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 도움을 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때도 정씨 일가가 대부분 정몽준 후보에 대해 지지를 나타냈지만 정몽구 회장은 끝까지 정치적 중립을 지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자동차는 이날도 대북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선친의 유지를 지키지 못하고 먼저 간 동생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할 것임을 잘 아는 정몽구 회장은 그래서인지 더욱 깊은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