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장례식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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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은 지난 4일부터 나흘간 조문객과 취재진들로 북적거렸다.
7일까지 다녀간 7천5백여명의 조문객 중엔 정·재·관계의 유명 인사들이 많아 기자들과 카메라는 이들을 좇느라 분주히 뛰어다녀야 했다.
하지만 이런 경황 중에도 늘 관심의 초점은 현대가(家)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정몽준 국회의원 등 고인의 형제들과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사장 등 현대가 3세들의 움직임과 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
언론이 주목한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른바 '가신'들이었다.
김재수 현대구조조정위원장,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정순원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장(사장) 등이 바로 그들.
현대가와 가신들의 동정을 확인하기 위해 나흘 동안 빈소 앞을 지킨 기자들은 서로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MK(정몽구 회장의 영문 머리글자)는 지금 어디에…,MJ(정몽준 의원의 영문 머리글자)는 누구와…,정순원 사장이 안 보이네"라며 서로 정보를 교환했다.
기자들이 이렇게 해야만 했던 것은 지난 2000년 3월에 벌어진 '왕자의 난' 때문이다.
당시 현대가 2세들은 그룹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 불화가 싹텄고 이는 가신들로까지 번졌다.
만 3년이 흘렀지만 그동안 이들 사이엔 여전히 앙금이 남아있었던 게 사실이다.
나흘 동안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한마디로 장례식장을 '화해의 장(場)'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5일 밤 열린 입관식에 유족과 친인척이 모두 모여 단합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 것과 김윤규 사장과 정순원 사장이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등의 장면에서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현대가의 화해가 가족 차원에서 머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대가와 현대그룹 임원들이 만들어낸 화해와 단합이 사업에서도 시너지효과를 발휘,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에 걸려 힘들어하는 '한국 경제 호(號)'를 힘차게 견인해주기를 기대한다.
장경영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