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4) 김상홍 <삼양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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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홍(金相鴻) 삼양그룹 명예회장(80)은 중용(中庸)의 철학을 갖고 수성(守成)의 과업을 완수한 2세 경영인이다.
삼양사는 김 명예회장이 태어난 이듬해인 1924년 설립돼 내년이면 80주년을 맞는다.
세계적으로 기업 평균수명이 30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삼양사라는 회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문제는 달라진다.
라면을 만드는 삼양식품과 헛갈리는 사람도 아직 적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 경제에 이바지해온 공헌을 생각하면 삼양사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80년의 장수비결 못지 않게 삼양사에 궁금한 건 그러니까 "왜 이다지도 조용히 지냈나"하는 점이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오전 11시부터 세시간 동안 이뤄졌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있는 삼양사 본사 11층 회장실에서 만나 그윽한 향기가 도는 녹차를 함께 했고 점심 시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골집으로 유명한 성북동 '국시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에는 박종헌 사장 등 삼양사 임원 4명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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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예회장 집안은 근대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가다.
아버지는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의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수당 김연수 선생,
큰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이자 고려대와 동아일보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 선생이다.
13남매중 셋째인 김 명예회장 동기 가운데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람은 둘째 형인 김상협 전 국무총리(95년 작고)와 동생인 김상하 삼양사 회장(전 대한상의회장ㆍ다섯째)이다.
김용완 경방 창업주가 고모부이고 그 아들인 김각중 경방 회장이 고종사촌 동생이다.
-삼양사의 80년 장수비결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뭐.
굳이 비결을 따지자면 정도(正道)를 걸으며 내실경영과 노사화합에 힘쓴 덕분이랄까.
욕심내지 않고 우리가 잘하는 것만, 그것도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만 사업을 해왔어요."
-33세때인 1956년에 삼양사 사장이 되셨는데 후발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할 때는 욕심이 나실 법도 했을 텐데요.
"사실 별로 아쉬운 것도 없어요.
우리도 여러가지 준비는 했지만 분에 넘치는 확장은 결국 안했거든요.
그때는 실력만으로 사업을 할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잖아요."
사실 삼양사는 야당인사인 인촌 김성수 선생이 자유당 시절부터 정부의 '탄압'을 받으면서 정부의 지원은 애당초 기대하지도 않았다.
-삼양사는 서비스업이 전혀 없는데 제조업만 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제조업이 우리 체질에 맞았다고 봐야지요.
사실 삼양종금이라는 금융사를 한 적도 있어요.
하고 싶어 한게 아니라 전북지역 상공인들이 지원을 요청해서 전북투금을 인수한 것이었지요."
-그래도 젊은 시절 호텔왕을 꿈꾸신 적도 있었잖습니까.
"그랬지요.
광복 직후 조선호텔에서 접시 닦는 일부터 배운 적도 있어요.
그런데 사고가 나는 바람에 그만 뒀지요.
이후엔 다시는 안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김 명예회장은 당시 3층 객실담당을 하다 투숙객이 카메라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책임자로서 유치장 신세를 하루 진 적이 있었다.
그 일로 호텔사업에 큰 비애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때 그 일만 생기지 않았다면 호텔사업은 하셨겠네요.
"그랬을 겁니다.
삼양사를 하면서도 호텔쪽 사업을 벌였겠지요.
내가 관심이 많았으니 초일류호텔을 하나 만들었을 거예요.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요.
그때 그런 일만 없었다면…."
-사업을 확장하자고 조르는 임직원들이 있었을텐데요.
"많았지요.
그래도 우리 실력에 벅찬 것은 정말 마음에 있어도 안했습니다.
정말 힘든 일이긴 했지만 우리가 잘하는 제조업에만 집중하면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는(無過不足) 중용 정신을 지켜왔지요."
배석한 박 사장도 결국 그런 정신이 안분자족(安分自足)의 기업문화가 됐다고 설명했다.
-경영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길을 걸으셨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고 호텔경영에도 흥미가 있었지만 결국 지나고 보니 경영이 천직이었어요.
보람도 많았고요."
김 명예회장은 보성전문 재학시절 전국 빙상선수권에서 1천5백m 등 3종목을 석권한 적도 있고 광복 직후에는 경찰에 투신하기도 했다.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장학사업에 많은 신경을 써왔어요.
그건 정말 보람이에요.
아버님이 1939년 만든 양영회와 내가 1968년 설립한 수당장학회를 통해 지금까지 중고생 9천8백명, 대학생 1만1천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어요.
연구지원 사례도 3백70건이 넘구요.
많은 이들에게 미래의 꿈을 키워갈 수 있게 지원했으니 그게 가장 큰 보람이에요."
-천직인 경영에서 손을 떼셨을 때는 섭섭하지 않으시던가요.
"하나도 안 섭섭해요.
동생(김상하 회장)이 의논 잘 해주고 후배 경영진들이 개성을 살려 회사를 키워가고 있으니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요.
금요일에는 사장단 회의에 앉아 보고도 전부 듣기도 하고요."
삼양사에는 현재 김 명예회장의 아들인 김윤 삼양사 부회장과 김량 삼양제넥스 부사장, 김상하 회장의 아들인 김원 삼양사 사장, 김정 삼양제넥스 상무 등 3세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3세들이 서비스업 등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하면 어쩌실 건지요.
"개성있는 경영자들이니 사업구조도 달라지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다 같이 의논하는 체제라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삼양사라는 회사 이름을 바꾸는 일은 없을까요.
"바꿀 일 없을 겁니다.
우리가 처음이구요, 담긴 정신이 얼마나 좋은데요."
삼양사라는 이름에 대한 그의 애착은 '수성'을 모토로 아버지의 창업 정신을 이어온 그의 고집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래도 그는 변화에 문을 열어두고 있다.
지난해부터 1백75억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회사 건물을 자랑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옛 토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신을 입히는 것도 쉽잖은 과업이에요. 삼양사는 그동안의 연륜의 지혜를 바탕으로 젊은 의욕과 도전정신으로 조화를 이루는 회사로 앞으로도 수백년 커 갈 겁니다."
김 명예회장은 요즘은 구자경 LG명예회장 등과 함께 하는 '단오회', 권이혁 전 서울대총장 등이 멤버인 '이삼회(1923년생 모임) 회원들과 함께 골프치는게 가장 즐겁다고 했다.
한때 13이었던 골프 핸디는 요즘은 18 정도란다.
젊었을 때는 위스키 한병은 마시는 애주가였으나 연초 감기를 심하게 앓은 뒤로는 포도주 두잔이 정량이다.
경제가 언제쯤 좋아질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국민 모두가 기본에 충실한 생활과 분수를 지키면서 각자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 경제가 곧 잘 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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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홍 삼양 명예회장 약력 ]
* 1923년 서울 출생
* 1941년 경복공립중학교 졸업
* 1943년 보성전문학교 상과 졸업
* 1945년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 수료
* 1956~1975년 삼양사 대표이사 사장
* 1968~1971년 대한제당협회 회장
* 1969~1975년 동아일보 이사
* 1969~1998년 경방 이사
* 1973~1980년 경복고등학교 총동창회장
* 1975~1988년 삼양사 대표이사 회장
* 1982~1989년 고려대 경영대 교우회장
* 1983~1993년 전경련 부회장
* 1993년 전경련 고문(현)
* 1993년 고려중앙학원 이사(현)
* 1999년 삼양사 명예회장(현)
* 1999년 양영회, 수당장학회 이사장(현)
* 2001년 하서기념회 이사장(현)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