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산업 경기가 시원치 않다. 잘 팔리는 물건이 없다. 제품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불경기에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 언제쯤 살아날지도 불투명하다. 업계에서는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의 불황에 버금가는 위기상황이라는 진단까지 나온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더니 악재가 겹쳤다. 날씨마저 순조롭지 않다. 더워야 여름산업이 활개를 칠 텐데 비만 내린다. 빙과업계 음료업계 임직원들은 하늘만 쳐다본다. 맥주업계도 마찬가지다. 음료 매출은 작년 이맘 때에 비해 20% 가량 줄었다. 에어컨도 도무지 팔리지 않는다. 재고를 떨어내기 위해 땡처리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마냥 하늘 탓만 할 수도 없는 법.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달라붙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곳이 주류업계다. 특히 맥주업계가 그렇다. 여름 성수기인 데도 판매가 신통치 않아 초비상이 걸렸다. 작년에 비해 매출이 3.4%나 줄었다. 작년 상반기에 1억상자(한 상자는 5백ml 20병)가 팔렸는데 올 상반기 판매량은 9천7백만상자에 그쳤다. 부산 맥주축제, 해변축제, 야간시간대 광고 강화 등으로 소비를 자극하고 있다. 위스키업체인 진로발렌타인스는 여름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름 밭갈이를 잘해야 성수기인 가을에 거두어들일 게 많아진다는 '농사론'이 그 배경이다. 이 회사는 최근 로또식 마케팅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위조 위스키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된 7가지 문항을 중요도에 따라 순서를 맞히는 것으로 위조 위스키 방지용 커버가 붙은 임페리얼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한 몫 하고 있다. 이 회사는 8월 말까지 계속되는 퀴즈에 약 1백만건이 응모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임페리얼의 잠재 고객이라고 보면 경쟁사 입장에서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 음료업계는 열대과일 망고를 활용한 신제품으로 불황을 돌파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불경기가 만들어낸 '재료 마케팅'인 셈이다. 롯데칠성을 필두로 망고음료를 내놓지 않은 음료업체가 없을 정도다. 망고음료를 내놓지 않았더라면 올 여름 치유하기 힘든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음료업계 관계자들은 얘기한다. 두유업계는 '검은 우유'를 화두로 불황 타개에 나섰다. 롯데햄우유 서울우유 매일유업 한미약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회사는 검은 콩과 검은 깨가 건강에 좋다는 사실에 착안, 이런 재료로 만든 우유를 내놓고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여름 바캉스철에 즉석식품 특수를 노리고 있는 업체들도 예년보다 못한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현장 위주의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농심 대상 CJ 등은 해변으로,산으로 달려가는 현장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생식회사들도 마찬가지다. 화장품업계도 해변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하며 여심(女心) 잡기에 나섰다. 신용불량자 3백만명 시대. 예전과 달리 소비가 쉽게 살아나기 어려운 판국이다. 소비산업은 분명 위기에 처했다. 각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는 파워 컴퍼니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위기 때 빛을 발하는 마케팅, 회사를 벼랑에서 끌어올릴 히트상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휴가도 잊은 파워 컴퍼니들의 여름 열전이 눈물겹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