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소득 2만달러' 목표를 언급하면서 국가발전 전략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쪽에서는 2만달러 소득론을 성장 지향적인 낡은 발전모델의 부활로 간주하면서 비판한다. 성장을 위해 다시 분배를 희생할 수는 없으며,신자유주의 성장정책이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분배만 악화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경기침체,실업,노사갈등 등 당면한 난국을 극복하고 다시 도약하기 위해 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는 등 경제 활성화와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장론과 분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향하는 이념이나 가치관이 다르다. 특히 그들이 학자인 경우 학문적 배경이나 이력에도 차이가 있다. 성장론자들은 대체적으로 미국에서 유학한 사람인 반면 분배론자들 가운데는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주로 미국 유학파들이 역대 정부의 소위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으나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유럽 특히 독일 유학 경력자들이 중용되고 있음이 눈에 띈다. 현 정부가 복지와 분배 지향적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데는 이들 집단의 성향도 한몫하는 듯하다. 80년대 후반 서독에서 유학생활을 한 필자는 참여정부의 학자들이 분배와 복지를 선호하는 현상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근 6년 동안 필자는 서독 복지제도의 혜택을 톡톡히 누린 바 있고,당시의 경험은 독일의 경제·사회체제에 대한 필자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도 국가개입을 통해 경쟁의 공정성을 보장하며 사회정책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갈등을 해소하려는 독일사회의 노력에는 우리가 눈여겨보고 본받을 만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필자는 독일이 과연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발전모델인가 하는 점에 회의적이며,특히 독일을 모델로 성장보다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입장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우선 독일에서 복지국가가 발전한 역사적 배경을 살필 필요가 있다. 독일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사회복지 입법이 등장하기 시작했고,1차 세계대전 후 바이마르공화국이 복지국가의 이념을 표방하면서 법과 제도에서 복지국가를 향한 획기적인 발전이 나타났다. 이러한 발전의 배경에는 19세기 말 제2차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세계의 공장'이던 영국을 추월해 세계경제의 선두에 섰던 독일경제의 비약적 성장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서독이 바이마르공화국의 전통을 이어받아 복지국가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었던 배경도 마찬가지다. 1950~1975년 사이 독일국민 1인당 소득은 약 3배 정도 증가했는데,'라인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독일 역사상 유례없이 높은 경제성장이 복지국가 건설의 토대가 됐던 것이다. 이처럼 독일의 사례는 복지와 분배를 위해서는 성장이 전제돼야 함을 보여준다. 바이마르공화국의 한 기둥이던 복지제도는 1920년대 후반 독일이 경제위기에 당면했을 때 신생 공화국에 과중한 부담이 됐고,결국 공화국이 몰락하는 한 요인이 된 것이다. 독일모델 자체가 내부적으로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된다. 고실업,저성장,만성적 재정적자 등이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드러나기 시작했고 통일을 거치면서 심각하게 악화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현재 독일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업,의료,연금보험 등 각종 사회보장제도와 노동시장을 개혁해 고용을 확대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가 반복되고 있지만 큰 성과는 없다. 일부 좌파 언론조차 독일이 자랑해왔던 '사회적 시장경제'와 '사회복지국가'의 기본 이념들을 의문시하고 있지만 개혁은 쉽지 않다. 대중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복지국가체제 자체가 개혁의 한계라는 비관적인 분석도 있다. 즉 유권자의 대다수가 복지제도의 수혜자이고,어떤 정당이든 그들의 지지를 얻어야만 집권하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구조에서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는 복지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독일사회가 과감한 혁신에 필요한 자기신뢰와 도전정신을 잃은 채 위태로운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는 우려와 한탄의 목소리가 높다. 결코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 봉착한 독일의 길을 답습해야 할지 의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