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애칭은 '룰라(Lula)'다.


지금이야 룰라하면 브라질의 최고 통수권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아듣지만 묘하게도 보통명사 룰라는 브라질에서 가장 흔하고 값싼 수산물 '오징어'를 뜻하는 단어다.


룰라는 1986년 금속노조 위원장에서 하원의원으로 변신한 이후 서민적인 이름 덕을 톡톡히 봤다.


우선 문맹률이 높고 외우기 어려운 유럽식의 긴 성명을 쓰는 브라질에서 '룰라'라는 애칭은 대중 인지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여기에 손가락 잘린 철강 노동자라는 출신 성분은 대다수의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짙은 동류의식을 느끼게 했다.


듣기에 따라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이 이름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세상을 한번 바꿔보자'는 대중들의 열렬한 연호와 함성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처음부터 새 대통령을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룰라'의 의미는 좀 달랐다.


오징어가 풍기는 어딘가 칙칙하고 위험하고 저급하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법조인이나 기업인, 대농장 주인과 외국계 자본가들로 구성된 브라질의 전통적 보수세력이나 부유층들은 바닷가 빈민들의 먹거리인 오징어를 좀처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에게 '룰라'는 빈민가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국제 외교무대에서 영어도 구사하지 못하는 대통령을 조롱하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기에 안성맞춤인 단어였다.


하지만 집권 7개월이 지난 지금, '룰라'라는 이름은 더 이상 이중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지지층이었던 농민 노동자 하급 공무원들중 일부는 '룰라는 배신자'라는 붉은색 현수막을 들고 거리 시위에 나서고 있다.


반면 기업가와 다국적기업 종사자들은 의외로 시장경제 시스템을 선선히 받아들인 룰라에 안도감을 표시하며 경제회생에 기대를 걸고 있다.


좌파 성향의 대통령을 반신반의했던 국제사회도 이제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브라질의 변화와 개혁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지난 80년, 수만명의 근로자들을 모아놓고 '기계를 멈추자' '거리로 나가자'고 극렬 파업을 선동했던 룰라는 과연 변한 것일까.


집권 여당인 노동자당(PT)의 주제 제노이누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룰라는 여전히 농민-노동-사회 운동을 지지하고 있다"며 "다만 대통령으로서 브라질 전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룰라는 대화와 협상을 대단히 중시한다고 스스로 얘기한다.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일 때도 "그들은 헌법상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두둔한다.


노예 노동을 일삼는 농장주들에 대해선 헌법을 개정해 재산을 몰수하겠다는 경고까지 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룰라의 강단은 지난 6∼7월 무토지 농민들과 공무원 노조의 대규모 시위때 드러났다.


지난 6월 '무토지 농업노동자 운동(MST)' 소속 농민들은 대통령궁이 위치한 수도 브라질리아 외곽에서 8백여ha의 농장을 습격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강제 점령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브라질 전체 토지의 47%를 인구의 1%가 과점한 상태에서 토지 재분배를 주장하는 농민들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무토지농민에 대한 토지분배 등 농지개혁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룰라로서는 '약속 이행'의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7월3일 MST 지도부를 만난 룰라는 단호하게 '노(No)'라고 말했다.


룰라는 "안되는 것을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정부와 국민간에 신뢰가 형성된다"며 "농지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절차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할 예정인 만큼 기다려 달라"고 주문했다.


7월7일엔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공무원 노조의 시위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상파울루에서만 2만명의 공무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마침 룰라는 유럽순방을 앞두고 상파울루의 국제전시장 '빠삘리옹 도 아네임비'에서 열린 신발-가죽 전시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모든 브라질 언론은 룰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성숙된 것이라야 한다"고 입을 뗀 룰라는 "데모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지만 그로 인해 연금개혁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이처럼 전통적 지지층 일부가 이탈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룰라의 인기는 각종 조사에서 70%선을 넘고 있다.


브라질 운송업협회가 최근 2천명의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룰라에 대한 지지도는 한달 전보다 오히려 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클레지우 안드라데 운송업협회장은 조사결과에 대해 "브라질 경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데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지지층들의 이탈도 있지만 과거 룰라 대통령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신흥 지지층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도 특기할만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상파울루=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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