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외환위기 이후 생산직 분야에서 새로 고용한 정규직 근로자 숫자는 4백명 정도다. 4만여 근로자의 자연 감소분 만으로도 1년에 최소 1천명은 새로 고용해야 마땅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해고 불가,구조조정 불가,해외투자 사전 합의,정년 58세 보장,평균임금 6천만원 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임단협 조항들을 들여다보면 정규직 고용을 기피했던 회사를 이해할 수 있다. 지난주 정부는 국민연금 개편안을 내놨다. 재정 상태를 감안하면 '더 내고 덜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정부 설명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직장과 지역의 편차가 심해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률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 또한 틀리지 않는다. 이처럼 회사도 정부도 책망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복지와 분배를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토록 선명한 진보성향을 앞세웠던 참여정부로부터 복지가 깎여 나가고 일자리가 봉쇄되는 소식을 잇달아 들어야 하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다. 물론 참여정부 들어 눈에 띄게 형편이 풀린 계층도 많다. 우선 공무원. 참여정부는 어느 정권보다 공직사회를 감싸 안으면서 출발했다. 그 결과는 늘어나는 보직과 높아진 직업 안정성과 현실화된 급여다. 국민연금과는 달리 공무원 연금은 펑크 날 때마다 세금에서 메워주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고 잘못된 행정을 지적하는 언론에 대해서는 '악의적 보도'라는 굴레만 씌우면 간단하게 빠져나갈 수 있으니 여론도 아랑곳 없다. 대기업 노조도 좋아졌다. 친노(親勞)정책을 배경으로 웬만하면 두 자리,심지어 20%가 넘는 임금인상률을 쟁취해 냈다. 노동장관의 눈부신 활동으로 회사측의 대항권은 봉쇄됐고 파업할 권리와 정년까지 고용될 권리(?)를 확보했으니 분명 새세상이 왔다. 공(公)자 혹은 그것과 비슷한 글자가 들어가는 곳은 대부분 이처럼 때이른 손익계산만으로도 혜택을 보고 있다. 민간 분야에서도 독점도가 높은 곳은 대부분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언론 내부에서조차 공공성이 높다는(사실이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TV쪽이 좋아졌다. 그래서 TV쪽 사람들을 만나면 "요새 정말 경기가 나쁜 겁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되는 것도 익숙해졌다. 나빠진 곳은 물론 더욱 많다.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이라고도 불리는 젊은 세대의 미래는 날로 암울해지고 있다. 우선 '백수'가 크게 늘었다. 공무원과 교원 등 공(公)자가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가고시를 치기 위해 늘어선 줄은 끝을 알 수 없다. 국민연금 개혁안이 기득권을 보호하면서 젊은이들은 고령인구의 생활안정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으로 밀려나고 있다. 일자리는 봉쇄되고 부담은 커졌으니 미래를 할인해쓰는,다시 말해 '세대 착취'가 구조화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정규직들의 완고한 권리투쟁이 하청업체 근로자와 비정규직을 더욱 궁지로 몰고 있음도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더 가진 자의 덜 가진 자에 대한 착취구조에 다름 아니다. 정부는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내걸었지만 그것이 그나마의 쪽박(일자리)까지 깨는 짓인 줄 모르는 사람은 정부밖엔 없다. 참여정부 6개월 만에 한국의 계급지도는 이처럼 기득권과 상층부가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다. 불행히도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이해할 만큼 그들은 충분히 성숙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분별 없는 진보적 열정이 어떤 엉터리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지금 잘 보고 있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