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원부가 노조의 불법파업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으로 영국에서 시행 중인 쟁의 찬반 우편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부정하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는 데다 주무부처인 노동부조차 제도 도입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논란이 일 전망이다. ◆ 산자부, '파업 찬반투표 신중해야' 우편투표제는 개별 조합원들이 쟁의행위 찬반 투표시 군중심리에 의해 찬성표를 던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 조합원 가정으로 법정 투표용지를 보내 의사를 결정하게 한 후 무기명으로 노조에 답신토록 하는 제도. 사용자측의 '노조대항권'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산자부가 최근 노동부 노사관계선진화 연구위원회에 건의한 12개 개혁과제 중 하나다. 이 제도는 지난 80년대 초 대처 영국 총리가 노동부문의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면서 처음 도입했으며 영국 전 사업장에 예외없이 적용되고 있다. 김종갑 산자부 차관보는 우편투표제 건의 배경에 대해 "불법파업이 분명한데도 조합원들이 노조 집행부와 동료들의 설득에 몰려 소신있게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차관보는 "불법파업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우편투표제 도입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산자부는 노조의 무분별한 쟁의행위를 막는 장치로 우편투표제 이외에도 △찬반 여부 의결 정족수를 조합원의 3분의 2로 상향 조정하고 △파업 찬반투표의 유효기간을 설정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 노동계, '비민주적인 발상' 산자부의 이같은 방침이 밝혀지자 노동계는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성명서에서 "노동자가 모여 토론하고 찬반투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비민주적이고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며 "파업 찬반투표에 사용자 등 제3자가 개입할 여지가 있어 노조의 자주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강훈중 한국노총 홍보국장은 "노동조합법에 보장된 직접ㆍ비밀투표 원칙을 침해하는 명확한 월권"이라며 "노사간의 또 다른 불신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난감' 노사관계 주무부처인 노동부 역시 우편투표제의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제 제도 도입에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민기 노동부 노사정책국장은 "연구위원회 논의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파업 찬반투표시 조합원들의 현장 개별투표가 당사자의 의사가 아닌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고 몰아세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사 자율ㆍ자치주의가 뿌리내린 영국의 전체적인 노사문화에 대한 연구 없이 일부 성공적인 제도만 취사선택해 도입하는 것은 노조의 반발을 극대화시키는 등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