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좋은모임'] '한국대학경제학회' .. 경제공부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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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서적'이 하나 둘 해금(解禁)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이후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하이에크'나 '프리드먼'못지 않게 공산주의 이론의 토대를 만든 '마르크스'에 익숙하다.
교내 학회나 여러 학교가 모여 만든 연합서클은 대부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주요 학습대상으로 삼았다.
90년대 들어서도 대학가의 이러한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고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기업의 최종 목적을 '이익 창출'이 아닌 '사회 기여'라고 답하거나 '성장'보다는 '분배'를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상의 중심추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셈이다.
지나친 중심 이동에 대한 반작용인가.
좌파적 시각을 우려하며 시장경제를 연구하는 대학생들의 모임이 올 초 대학가에 등장했다.
'한국대학경제학회'(KUSEA·회원들은 '쿠세아'라고 부른다)의 시작은 미미했다.
겨우 5명의 '동지'들이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공부해 보자고 뜻을 모았다.
회장에는 손창일씨(27.고려대 법학대학원 1학년)를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그의 독특한 이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2002학년도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
얼핏 듣기엔 자유시장경제와 가장 관련이 적은 사람 같지만 내막을 알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학생회가 부활한 80년대 초반 이후 고려대에서 처음으로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이 선출됐다며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는데 그 뉴스의 주인공이 바로 손 회장이다.
"대학생활 내내 한 가지 아쉬움이 마음 속을 맴돌았습니다.한국은 분명히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사회인데 정작 내 머리 속엔 이에 대한 정돈된 지식이 없다는 아쉬움이었죠.자유시장경제나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학회를 꾸려 나가는 데 어려움도 많았다.
곧바로 주변에서 '황당하다'는 질책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모델로 삼을 만한 선례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회원 모집에서부터 커리큘럼 짜기,지도교수 선정 등 모든 걸 설립 멤버들이 몸으로 부딪혀 해결했다.
우선 5명이 돈을 걷어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2평 남짓한 공간부터 마련했다.
각 학교를 돌며 회원 모집공고를 붙이고 교수들을 찾아다녔다.
노력의 결실은 의외로 빨리 나타났다.
예상보다 많은 학생들이 학회의 취지에 공감했고 일부 기업인들로부터는 "대학생들이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됐느냐"는 칭찬도 들었다.
7개월이 지난 현재 '쿠세아'회원은 오프라인으로 활동하는 학생들만 5백명선.
온라인 멤버들까지 합하면 1천명을 거뜬히 넘어선다는 게 기획팀장을 맡고 있는 송현민씨(27·이화여대 정책대학원 여성정책 전공)의 자랑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회원을 받아들인 건 아니란다.
가입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일정한 주제를 던져주고 이에 대한 생각을 밝히게 한 뒤 학회의 근본이념에 맞는 학생들만 받아들였다.
'SK사태를 어떻게 보는가''조흥은행 파업은 온당한가''재벌은 개혁의 대상인가'등이 지금까지 출제된 주요 주제들이다.
교수들도 선뜻 '지도교수'타이틀을 수락했다.
현재 정갑영(연세대 경제학과) 최병일(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김석준(이화여대 행정학과) 김종석(홍익대 경제학과) 박효종(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안재욱(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학생들에게 이론적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
'쿠세아'의 주요 활동으로는 주 1회 각 학교별로 열리는 세미나,매달 개최되는 대학 순회 강연회,홀수달마다 열리는 1박2일 일정의 경제캠프 등이 있다.
이 밖에 방학에는 8주짜리 경제강연회도 열고 이달부터는 인터넷신문도 발간할 예정이다.
또 18일부터는 3박4일 일정으로 '제1회 아시아 청년 국제포럼'도 마련한다.
그동안 쌓아왔던 학회 노하우를 결집한 야심작이다.
이번 포럼에는 중국 홍콩 일본 대만 대학생 20명이 초청돼 한국 대학생 27명과 함께 자유시장경제를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회도 갖는다.
"얼마 전 한 원로 기업인을 만났는데 '한국 대학생들은 시장경제를 너무 모르고 사회에 진출한다'는 안타까움을 전하시더군요.우리 학회가 한국 대학생들의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그리고 여건이 허락하면 전세계 학생들이 참여하는 학회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손 회장이 품고 있는 '쿠세아(www.kusea.org)'의 미래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