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들이 '디플레이션'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올들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지난 상반기 중 아시아 각국의 물가동향을 보면 이런 우려가 어느 정도 사실인 것으로 판명됐다. 상반기 중 일본과 대만은 각각 마이너스 0.2%대의 물가 하락으로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 싱가포르도 각각 0.5%,0.4%대의 낮은 물가상승률로 디플레이션의 전단계인 '디스 인플레이션' 국면에 놓여 있다. 디플레이션이란 물가가 계속해서 하락해 마이너스 국면으로 떨어진 것을 말한다. 반면 디스 인플레이션은 지금은 물가상승률이 플러스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언제든지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디플레이션은 경제적 비대칭성(economic asymmetries) 때문에 인플레이션보다 피해가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목임금이 하방경직적인 경우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면 실질임금이 상승하기 때문에 실업률이 높아지고 경기는 위축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부채의 실질 상환부담을 가중시키는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은 수요를 위축시키고 금융회사의 자산건전성을 저하시킨다. 또 디플레이션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면 실질 이자율이 상승하기 때문에 경기진작을 위한 통화정책도 무력해진다. 특히 부채비율이 높은 상태에서 자산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는 경우 디플레이션의 폐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만약 경제주체들이 이런 금융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실물자산을 내다팔수록 물가는 더욱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소용돌이'(deflationary spiral)에 빠진다. 우려되는 것은 아시아 국가들이 디플레이션에 빠져있는 것이 선진국으로부터 통화마찰의 빌미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올들어 선진국들은 아시아 국가들이 통화가치를 경제여건에 비해 낮게 유지하고 있는 점을 들어 환율조작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 증거로 아시아 국가들의 과다 외환보유액을 들고 있다. 과다 외환보유액은 아시아 국가들이 자국통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 달러를 사들인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 국가들이 자국통화 가치를 경제여건에 맞게 평가절상해야 선진국 경기가 회복될 수 있고 경상수지 적자가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 선진국들의 시각이다. 문제는 아시아 국가들이 선진국들의 이런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아시아 국가들이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통화가치마저 평가절상되면 디플레이션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우리나라도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을 놓고 정책당국과 민간이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재정경제부 한국은행 등의 정책 당국자들은 상반기 물가상승률이 3%대(전년동기대비)를 기록했고 앞으로 경기가 회복될 가능성을 들어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반면 일부 민간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언제든지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대조적이다. 비록 경기회복 요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상품 범람으로 가격파괴 현상이 심화되는 시대에서 물가하락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 어느 쪽이 가능성이 높을까. 여러 가지 요인 중에서 우리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와 지난 상반기 가장 큰 물가변동 요인이었던 국제유가의 향방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기관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으나 우리 경기는 상반기보다는 하반기 이후에 다소 나아질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미국경기를 비롯한 대외여건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도 세계경기가 회복되고 계절적으로도 다음달부터는 북반구 지역이 원유 성수기인 동절기에 접어드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하락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따라서 우리 경기는 일부에서 우려하는 대로 디플레이션에 처할 가능성은 현 시점에서는 비교적 낮아 보인다. 다만 디플레이션의 피해가 워낙 큰 점을 감안하면 선제적인 차원에서 대책은 마련해 놓아야 한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정책금리(콜금리)는 경기회복 신호가 명확히 나타날 때까지는 낮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