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4 03:16
수정2006.04.04 03:20
동대문 패션몰에 신상품이 없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년에 비해 30∼40%나 줄었다.
추석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은 가을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
그러나 올해는 신상품이 턱없이 부족하다.
불황으로 도매상권 디자이너들이 대거 이탈한 데다 공장들이 줄도산해 의상 제작 단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토요일인 지난 16일 새벽 1시.
서울 동대문운동장 옆 패션몰 거리는 사람과 차로 붐빈다.
이 시간에 동대문 도매상권을 누비는 사람들은 대부분 추석 물건을 떼러 온 소매상들이다.
길가에 길게 늘어선 지방 관광버스 옆엔 상인들이 사놓은 짐꾸러미가 잔뜩 쌓여 있다.
불황이 심하다지만 추석이 다가와서인지 오랜만에 활기를 띤다.
하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어둡다.
"물건이 왜 이렇게 없어요? 특이한 디자인도 드물고."
한 소매상이 불만을 토로한다.
"디자이너가 절반 가까이 준 것은 아시죠? 디자너가 없는데 어떻게 옷을 많이 만들어요.불황으로 공장도 줄었고…."
도매상 점원은 말 끝을 흐린다.
그는 신상품의 수가 지난해보다 30∼40% 줄었다고 귀띔했다.
실험적 의상을 취급해온 소매상들은 신상품이 부족해 아우성을 지른다.
도매상권에서 수요가 있을 만한 무난한 디자인의 옷만 취급하기 때문에 독특한 디자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두타와 헬로에이피엠에서 장사를 한다는 한 여성복 상인은 "매장 컨셉트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추세라면 국산 고급품을 고집하던 상인들도 중국산 저가 의류를 들여놓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남성복을 파는 상인들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도매상권에서 남성복을 팔던 디지이너숍 중 절반이 문을 닫았다.
명동 밀리오레의 한 남성복 상인은 "단골 디자이너숍 두 곳이 모두 문을 닫아 새 도매상을 찾아야 했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매몰 장사도 제대로 될 리 없다.
가장 큰 변화는 한 번에 사가는 물건의 양이 현저히 줄었다는 것.
도매몰 해양엘리시움에서 남방 셔츠를 파는 상인은 "작년만 해도 사이즈당 10개는 기본이었는데 올해는 5개 팔기도 벅차다"며 "소매상들이 가을 경기에 대한 불안으로 물건을 조금씩만 사 간다"고 말했다.
도매몰을 찾는 소매상인의 수도 빠르게 줄고 있다.
한 도매상가가 7월 첫째주에 조사한 '고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누죤 디자이너크럽 APM 등 3대 도매몰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버스를 타고 올라온 지방상인 수는 하루 평균 1천1백78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의 1천9백34명보다 40%나 줄어든 수치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살아나야 동대문 패션몰의 경쟁력도 회복된다고 말한다.
동대문패션몰 전문 사이트 동타닷컴의 신용남 사장은 "동대문은 회복이 빠른 상권"이라며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하면 디자이너들이 속속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매상권 매출마저 무너진다면 도매상권 경쟁력이 급속히 약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