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가슴은 클수록 좋은가. 할리우드 영화는 '그렇다'고 부추긴다. '브루스 올마이티'의 주인공은 전지전능한 힘을 부여받자 마자 애인의 가슴을 키우고,'터미네이터'의 기계인간 TX는 쇼윈도의 마네킹을 본 뒤 가슴을 부풀린다. 미국에선 10년 전 B컵이 주로 팔렸으나 근래엔 C컵이 대종을 이룬다고 한다. 한국도 비슷한 추세라는 소식이다. 속옷업체 비비안이 97년부터 올 상반기까지의 사이즈별 브래지어 매출을 봤더니 A컵이 줄고 B컵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컵 사이즈는 밑가슴과 가슴둘레의 차이에 따라 구분되는데 7.5cm면 A컵,10.0cm면 B컵,12.5cm면 C컵이다. 한국여성의 경우 종래 '80A'가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는데 갈수록 밑가슴둘레는 줄고 가슴은 풍만해져 75B의 증가 추세가 두드러진다는 얘기다.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체형 자체가 서구화된 까닭이라지만 큰가슴을 선호하는 여성들의 의식 변화도 무시 못할 요인으로 꼽힌다. 때문인가. 90년대 중반 부직포로 시작된 브래지어 패드는 식물성 글리세린 등을 넣은 워터패드에서 에어패드, 작은 알갱이를 채운 스킨볼륨패드 등으로 진화(?)하더니 올 여름엔 아예 양쪽 가슴에 실리콘을 붙이는 접착형까지 나왔다. 성형용 보형물의 크기가 94년 1백35cc에서 2백65cc로 늘어났다고 하는가 하면, 가슴을 키우는 식품까지 등장했다. '가슴이 크면 머리가 나쁘다'고 여기던 한국여성들의 생각이 이렇게 바뀐 이유가 무엇인지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몸매를 드러내는 노출 패션 탓이라고도 하고, 역사적으로 사회가 불안정하면 큰 가슴이 선호됐다는 걸 들어 최근의 불황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식생활 변화에 따라 체형이 변하고 그 결과 가슴이 커지는 걸 이상해 할 이유는 없다. 적당히 볼륨있는 가슴이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조건 '클수록 아름답다'는 식의 논리가 확산되는 건 어딘가 석연치 않다. '대중문화에 물들면 자신이 원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은 문화를 욕망한 것으로 착각,따라하는 역행적 모방관계에 얽혀들 수 있다'고 한다. '왕가슴 선호풍조' 또한 그같은 현상의 하나가 아닐까 싶은 건 괜한 걱정인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