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등단한 소설가 김현주씨(42)가 첫 소설집 '물 속의 정원사'(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지난 88년 계간지 '문학과 사회'에 발표한 등단작 '미완의 도형'을 포함해 모두 13편이 실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기억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현실과 기억의 중간쯤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작품 속 화자들은 그 기억들과 대면하려 한다. 기억들을 일일이 복기하고는 그것을 망각하거나 순응하는 것이 김씨 소설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작품 '32일'에서 소설가 최지환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유년과 청년시절의 기억들을 완전히 묻어버리고 자신의 과거를 조작해 내려 한다. 그러나 그는 사고로 아내와 아이를 잃고 자신의 기억마저 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과거를 복원하게 되지만 그의 의식은 여전히 몽유 속을 헤맨다. '불의 꽃대궁'에서 수연은 시인과 불륜에 빠지지만 이내 배신감을 느끼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을 시도한다. 헤어디자이너인 문효는 남편의 뒤치다꺼리에 진절머리를 내다 다시 만난 옛 남자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두 사람은 꼬여버린 삶에서 도망이라도 치듯 꽃이 만발한 곳으로 자주 여행을 떠나지만 서로에게서 숨길 수 없는 상처만을 발견할 뿐이다. '영각 27km'에서 신문사 기자인 '나'는 10년여 전 사고로 죽은 '그녀'의 뼈가 뿌려진 절터로 빠져든다. 고통스런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해 복원하려는 시도에 대해 작가는 "인간의 본질에 깊이 들어가 정체성과 소외의 문제를 파헤치고 싶었다. 감내하기 어려울 만큼 힘들면 제3의 공간을 찾았다. 거기서 인간의 정체성을 발견하려 했다"고 말했다. 소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선 "결국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을 고민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자기의 기억을 잊지 않고 기억을 상기하고 본질을 찾고자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