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10년의 약속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영국의 존 메이저가 총리가 됐을 때 앞으로 25년 동안 생활수준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성급한 약속 아니냐고 생각했다고 한다.
과연 그런 것이었을까.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복리계산'을 가장 위대한 수학적 발견이라고 했다.
연간 성장률로만 보면 별반 차이가 없어 보여도 여러 해에 걸쳐 누적되면 큰 격차를 낳는 것이 바로 '복리(compounding)효과'다.
복리효과를 설명할 때 곧잘 활용되는 것이 이른바 '70의 법칙'이다.
소득이 매년 x% 성장하면 대략 70/x년 후에 두 배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대 소득이 매년 2% 증가하면 35년쯤에,매년 7% 성장하면 10년쯤 두배가 된다는 얘기다.
영국의 국내총생산을 생활수준의 지표로 삼아 '70의 법칙'을 적용하면 25년 후 두 배가 되려면 대략 2.8%의 성장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 성장률은 당시 자연스런 것이었다고 하니 메이저 총리로서는 지킬만한 약속을 한 것이다.
게다가 25년은 자신이 물러나고도 한창 남을 기간이라는 점에서 신경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안전한 약속이었던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10년 이내에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의지가 담긴 듯한 10년의 약속은 메이저 총리의 그것과 뭐가 다를까.
국민소득은 경제성장률 환율 물가 인구증가율 등을 고려해야겠지만 다른 조건이 같다면 성장률만 가지고도 대략 가늠할 수는 있다.
국민소득이 지난해 6%대의 성장률만 따라간다고 해도 '70의 법칙'상 10년 정도면 2만 달러에 다가선다.
그러나 성장률이 반으로 떨어지고 그 추세를 벗어나지 못하면 시간은 두 배,즉 2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금년 성장률은 3%대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것도 잘 해야 말이다.
10년 뒤 약속은 25년 뒤 약속보다는 나은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0년 뒤 대통령은 이미 떠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실현 여부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점에서는 존 메이저 총리와 똑 같다.
다른게 있다면 출발부터 불안하기 짝이 없어 이것이야말로 성급한 약속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금년 후반기에는 성장동력 확충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특히 노사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7%의 잠재성장률 공약을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났어야 할 일이라고 느낄 것이다.
당시 7% 잠재성장률 공약이 어떻게 나왔는지 상기해 보자.기존의 잠재성장률 5.2%(KDI 예측)에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 0.9%포인트,동북아 개발사업 0.5%포인트,노사화합을 통한 손실보전 0.2∼0.3%포인트,기업경영 투명화,인적자원 활용,기술진보 0.2∼0.3%포인트 등을 더한 결과였다.
여기서 동북아 개발은 제쳐 두더라도 다른 것은 어떨까.
여성인력을 떠나 기업의 투자가 있고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경제활동에 참가할텐데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노사화합을 통한 손실보전 효과는 지난 일련의 사건과 주5일제 갈등에 비춰 보면 차라리 황당하다는 느낌뿐이다.
그럼 기술진보를 통해서인가.
청와대가 성장동력이라는 10대 미래산업을 보면 그것을 발표하느라 시간을 보냈나 싶다.
그게 아니면 부처간 갈등을 조정하느라 그랬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더 한심한 일이다.
잠재성장률 추가는커녕 기존 잠재성장률마저 4%대로 내려앉는 것은 아닌지 정말 걱정이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10년의 약속을 한가지 더했다.
자주국방이다.
이것은 또 성장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10년은 놔두고 앞으로 5년간의 분명한 약속을 듣고 싶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