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가 기업이나 투자자 모두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던 때가 얼마 전인데 기업공개를 꺼리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한편에서는 증권시장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한다. 그러나 거래소 상장이나 코스닥 등록을 기피하는 분위기는 오히려 증시 발전에 청신호다. 장기적으로 안정된 자금조달을 추구하기 위해 공시의무나 시장감시기능 등을 기꺼이 수용하는 기업만이 증시를 찾는다면 증시의 신뢰성은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증권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없는 기업이 상장할 이유는 많지 않다. 한때 코스닥시장이 과열되자 등록 후 창업사장과 핵심인력이 보유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떠나 빈 껍데기만 남은 회사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피해자는 투자자뿐 아니라 신뢰성을 잃은 증시,그리고 우수기업을 잃은 국가 모두다. 이것이 증시가 유통시장으로서 유동성만을 강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가장 간편한 기업형태인 개인기업을 운영하다가 기업가정신에 충만하여 기존사업을 확장하거나 신규사업을 추구하려면 필요한 투자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해야 한다. 증시는 기업이 일반대중을 상대로 거액의 자금을 조달해 실물투자로 가치창출이 가능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주식거래를 자유롭게 해 유동성을 높여 준 것도 기업의 주식발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증시정책은 투자결과를 최종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투자자들이 마음 놓고 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증시상장의 또 다른 순기능은 주식거래과정에서 주가가 시장의 다양한 정보를 흡수한다는 것이다. 또한 경영자는 주가를 통한 시장감시 기능에 의해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특별히 추가적인 대규모자금이 필요하지 않거나 경영자가 증시에서 평가받기를 원하지 않는 기업은 구태여 기업공개를 할 필요도 없고,기업공개를 해도 증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증시 육성은 모든 기업을 공개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외부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을 간접금융시장에서 직접금융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다. 자금 공급자인 투자자와 자금수요자인 기업이 증권을 통해 직접 연결되는 자본시장은 자금흐름과정에 중개기관이 개입하는 금융시장보다 투명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 또한 회수기간이 길고 투자수익이 불확실한 사업투자에 사용되는 자금은 역시 회수기간이 길고 투자수익이 불확실한 증권으로 조달하는 것이 경제 전체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합당하다. 초기에는 증시 규모를 키우고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투자기회를 제공할 필요도 있어 세제상·법률상 혜택뿐만 아니라 경영권을 보호해 주면서까지 증시 상장을 독려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에서 우리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과 세계 증시에서 우리 증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비슷한 현시점에서 증시 상장을 기피한다고 투자자 보호와 주주가치 증대라는 대명제를 양보한다면 알맹이는 없고 겉모양만 좋은 회사를 비싼 값에 팔아치우는 부도덕한 경영인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 된다. 그 동안에 도입한 공시규제강화와 지배구조개선은 경제위기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제도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기업들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대량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투자자들이 신뢰를 갖고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증시가 되도록 효율성 증대와 공정성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증시에서의 자금조달로 성장을 꾀하는 우량기업을 사전적으로 규제하여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거나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기업이나 경영자에게는 자율을 인정하되 투자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불법·불공정한 행위에 대해서는 사후적으로 엄격히 처벌하는 것도 사전적 규제 못지 않게 예방효과가 크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