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진주' 아르헨티나의 눈물] (3) '페로니즘'에 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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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서는 공공요금을 올리는데도 노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몇년째 동결상태인 전력요금이 대표적이다.
자리 수준이다.
민간 전력회사들이 대규모 적자를 호소하며 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다른 노조도 아닌 바로 전력 노조가 총 파업을 경고하며 한사코 요금인상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빈민들이 2천만명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공공요금을 올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노조의 논리다.
물론 현실적으로 일리가 있는 얘기다.
하지면 멀리보면 거기에는 분명히 또 다른 현실이 있다.
아르헨티나 국내투자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전기 가스 통신 회사들은 현금흐름 악화로 전혀 신규투자를 하지못하고 있다.
페소화의 갑작스런 평가절하로 소비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투자 마저 이뤄지지 않아 아르헨티나 경제는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공기업 민영화 조치로 대부분 다국적 기업들로 주인이 바뀐 민영회사들이 아르헨티나 정부의 이같은 태도를 이해할리 만무다.
환율이 3배 이상 폭등하고 물가도 치솟았는데 언제까지 밑지고 전기를 팔겠느냐는 입장이다.
후안 루이스 부르 중남미경제연구소 소장은 "전력요금 인하 논의가 시작된지 벌써 20개월이 지났다"며 "정부는 노조의 눈치를 보고 노조는 끊임없이 집권당인 페론당의 노조출신 인맥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조에 대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이같은 태도를 서방 언론들은 흔히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설명한다.
여기에는 1950년대 아르헨티나를 통치했던 후안 도밍고 페론(1895∼1974)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나중에 이데올로기 수준으로 승격된 '페로니즘(Peronism)'을 들여다 보지 않고서는 아르헨티나 경제의 과거와 현재가 설명되지 않는다.
지난 80년대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이민을 가 현지에서 LK글로벌 이라는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교포 강태민씨는 "이곳에서 페론의 위상은 거의 절대적"이라며 "페론당에 소속된 사람들은 부자든 빈민이든 페론에 대해 동일한 정서를 갖고 있다"고 전한다.
◆후안 페론 누구인가=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아들로 189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州) 남부에서 태어났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43년 소장파 장교들의 모임인 통일장교단(GOU)의 지도자로 군부 쿠데타를 주도하면서 정계에 진출,1944년 파레르 정권하에서 국방장관 겸 노동장관이 되어 근로조건의 개선과 임금 인상으로 노동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집권후 페론의 정치적 성향은 일종의 '국가 사회주의'로 나타났다.
언론 보도의 자유를 통제하고 외국산업의 배제와 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부패청산을 위한 개혁조치들이 취해지고 노동단체에는 전례가 드문 각종 혜택들이 주어졌다.
나라 살림살이도 괜찮았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대 곡창지대 팜파스에서 나는 곡물로 떼돈을 벌어 경공업에 집중 투자를 하고 있었다.
노동자 대중들에겐 이같은 즐거운 기억들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고 이는 페로니즘으로 승화됐다.
하지만 페론의 공(功)은 여기까지다.
페론은 1949년 헌법을 개정,재선에 성공하면서 독재의 길로 들어선다.
자신의 정치이념을 '정의주의(Justicialismo)'라는 이념으로 포장하며 노동자들의 계속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1955년에는 사회개혁을 명분으로 교회까지 탄압해 카톨릭 교도로부터도 거센 반발을 샀다.
결국 군부는 그해 9월 혁명을 일으켜 페론을 국외로 추방했다.
페론은 그에 대한 향수를 이기지 못한 대중들의 지지에 힘입어 1973년 9월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10여개월 뒤인 1974년 7월 세상을 떠났다.
혁명가가 아닌 독재자 페론이 아르헨티나에 남긴 유산은 적자 투성이의 정부 예산 뿐이었다.
◆페론의 추종자들=노조의 영향력은 1945년 후안 페론이 창당했던 페론당을 통해 구현된다.
페론당은 오랫동안 아르헨티나 정치 무대의 주류를 형성해왔다.
현 네스토 키르츠네르 대통령을 비롯해 에드왈드 두알데,로드리게즈 사,카를로스 메넴 등의 전임 대통령들도 모조리 페론당 소속이다.
이들 대통령은 대부분 근로자 출신이 아니었지만 노조의 요구를 도외시하고서는 페론당에서 성장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조합원 8백만명을 거느린 노동자총연맹(CDT)위원장은 "노조는 항상 페론당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최근 전력 요금인상 반대를 주도하고 있는 오스카 레즈카노 전력노조위원장(70).전직 CDT 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42년동안 노조활동을 한 노동계의 원로다.
그는 "CDT 위원장 시절 현직 대통령을 보름에 한번씩 만났다"며 "지난해 초 두알데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그에게 흰 종이를 줬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시작해 사회를 안정시켜달라는 주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전력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력회사에 근무하는 근로자들 역시 요금인상을 바라고 있습니다.
회사가 이익을 내야 임금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절대 빈곤층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부가 반드시 올려야하겠다고 한다면 원칙적으로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요금을 부자와 빈민 간에 이중적으로 책정해달라고 요구할 생각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노동해방을 주도했던 페로니즘은 현대에 이르러 이런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시장논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부에노스아이레스=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