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선진국들이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이 러시아가 '경제 강국'을 향한 힘찬 비상(飛上)을 시작했다."(파이낸셜타임스) 1998년 8월17일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했던 러시아 경제가 불과 5년만에 위기에서 벗어나 G8국가로 발돋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2000년) 이후 정치적 안정이 이뤄진데다 수출의 54.6%를 차지하는 원유 가격이 99년부터 강세를 지속,넘쳐나는 달러화로 '경제성장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것이다. 알렉세이 쿠드린 재무장관은 "연 6% 이상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올해 G8회원국이 된 데 이어 오는 2006년에는 선진국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하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고(高)유가'와 정치안정이 성장 견인차 러시아 경제가 파탄 일보 직전에서 급속한 회복세를 보인 데는 어느 정도 '행운'이 따랐다. 모라토리엄 선언 후 6개월만에 최대 수출품목인 원유 가격이 급등,석유 수출·수입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의 원유생산(하루 7백34만배럴)이 러시아 경제회복에 원동력을 제공했던 셈이다. 모라토리엄 사태에 따른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수출 경쟁력이 개선된 데다 국내 산업 가동률을 최대한 높여 수입물가 상승에 적극 대처한 점도 경제 회복에 힘을 보탰다. 푸틴 대통령이 '강력한 러시아 재건'을 목표로 중앙정부 권한을 대폭 강화해 정국을 안정시킨 것도 일조를 했다. ◆해외 자금 몰린다 정치·경제 상황이 개선되면서 외국인 투자도 집중되고 있다. 특히 올 들어 지구촌이 이라크전쟁 북핵 등의 영향으로 지정학적 위기를 겪는 동안 신흥시장인 러시아는 '안전 투자처'의 위치를 완전히 굳혔다. 덕분에 지난 2월 영국 석유회사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67억5천만달러를 출자,러시아 내 대규모 천연가스·석유 합작법인을 설립한 이후 해외자금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고 있다. 석유 수출대금에다 해외 자금까지 몰리면서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7월말 현재 6백44억5천만달러로,세계 8위권으로 올라섰다. 물론 러시아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완전 해소된 것은 아니다. 특유의 '관료주의'와 '부의 집중'은 최대 약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석유를 제외할 경우 대부분의 산업이 효율성에서 떨어지고 있는 점도 많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매우 우호적인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며 "러시아 투자를 늘리려는 서방 기업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