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ident@kdu.edu 내가 1993년 록펠러재단 소속으로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벨라지오연구소에 상주학자로 있으면서 미국 남부에 진출한 일본기업에 대한 책을 쓰고 있을 때였다. 그곳에서 함께 연구하던 동료학자들이 복잡한 내 정체성에 대해 한 말이 생각난다. "한국 출신으로 미국대학에서 공부한 후,미국에 거주하면서,그것도 일본에 있는 기업이 아니라,미국에 투자한 일본기업을 연구한 후,그에 관한 책을 북부 이탈리아에서 쓰고 있으니,내 정체성은 현대 공산품 만큼이나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포드자동차 회사의 제품인 '크라운 빅토리아'를 예로 볼 때,그 차는 미국과 독일 일본 멕시코 스페인에서 생산한 부품들을 캐나다에서 조립한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세계화의 탓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물질문화든 정신문화든간에 문화적인 요소가 생성 발달한 지역(나라)과 후에 그것이 전파된 영역들을 살펴보면 세계화는 인류문명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며,문화요소들에 대한 정체성 문제는 '정체성'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문화요소는 우리와 너무나 오랫동안 함께 해 왔기에,그것들이 우리사회에서 생성되었고 발전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랄프 린튼에 의하면 우리는 잠자리에 들 때 파자마를 입는데,이 파자마는 원래 동부 인도에서 기원했으며,잠을 잔 침대는 페르시아나 아시아 마이너에서 유래된 것이며,출근길에 비가 올 것 같으면 고무로 된 덧신을 신는데,그 덧신의 원료인 고무는 멕시코인들이 발견한 것이라고 했다. 또 우산을 들고 나가는데,그 우산은 인도에서 발명된 것이며,출근길에 기차를 타고 좌석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려고 한다면(금연이 선포되기 전의 얘기),담배는 고대 멕시코에서 발명된 것이며,시가는 원래 브라질에서 발명한 것이라고 했다. 린튼의 문화요소에 대한 목록은 길며,우리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만일 어떤 '문화국수주의자'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문화요소들이 외국에서 왔기 때문에 국산품 애호 차원에서 그런 외래 문화요소를 버려야만 한다면,그는 거의 알몸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문화요소의 정체성 문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참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지도 모른다.